“하수처리장 악취날까 걱정”
“하수처리장 악취날까 걱정”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1.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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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남구 임암동 임정마을 박병섭씨

87년부터 이어온 벅수제 명맥도 가물
아파트, 도로 공사로 마을 반 토막 나
  

▲ 박병섭씨.
효천역을 지나 바로 오른쪽으로 꺽어들면 남구청에서 조성한 자전거 하이킹로의 시작점이다. 그만큼 자동차 통행량이 적고 문화재 등 볼거리가 많다는 말이다. 임정(林亭, 들머리)마을은 대촌천이 굽어 휘돌아나가는 모퉁이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 광산 김씨, 천안 전씨가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았던 마을이다. 

그런데 요즘 마을 주민들의 심기가 결코 편하질 못하다. 바로 마을 코앞에 들어서게 될 ‘하수종말처리장’ 때문.

마을을 찾은 날 ‘임정슈퍼’를 운영하는 박병섭(64)씨가 걱정스러운 듯 공사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덕동에 있던 하수처리장이 이리로 옮겨온답니다. 효천지구가 들어서면 거기서 나오는 하수도 처리허고. 지하3층인가 4층인가로 지어서 깨깟하다고는 헌디 그 냄시가 어디로는 빠져가야 할 것 아니오? 보다시피 주민들 걱정이 크요.”

박씨는 못마땅하다는 듯 공사장 쪽을 향해 연신 혀를 끌끌 찼다. 공사장 입구에는 청년회, 향우회 이름으로 ‘생존권 보장,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나부꼈지만 광주시나 시공사인 대우 측에서는 아직까지 일언반구도 없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마을 앞으로는 풍암지구와 광목 간 도로를 잇는 대로가 날 예정이란다. 이 때문에 마을의 1/3이 무 자르듯 잘려나갔다. 박씨네 슈퍼도 공사가 시작되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효천지구 아파트 때문에 길을 내는 모양입디다. 근디 주공이 돈이 없어가꼬 2년 연기됐닥 합디다. 뉴스 봉께 주공이 44조는 있어야 일을 헌디 시방 13조 밖에 없닥 안합디여? 그랑께 앞으로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누가 알 것이요?”

▲ 주민들은 마을 코앞에 하수종말처리장이 들어서면 악취가 진동할 것이라며 공사중단을 촉구하는 플래카드를 공사장 입구에 내걸었다.
슈퍼 앞 200여년 쯤 됐다는 왕버들 한 그루는 자신의 운명이 어찌될 줄도 모르고 실바람에 가지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80여 호 60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다는 마을은 지금 33호가 남아있다고 한다. 땅뙈기 깨나 있는 사람들은 수용보상이라도 받아 마을을 떴지만 고작해야 20~30평 집 한 칸 뿐인 노인들은 오라는데도 갈 곳도 없다.     

“도로가 논은 평당 60~70만원 받고 조금 떨어진 논은 40만 원쯤 받았는갑습디다. 아파트 짓는다고 폴새 보상은 끝나고 논들이 모다 풀밖에 없습디여? 집은 평당 200만원을 준대도 20평 해봐야 4천 아니오. 그 돈으로 어디 전세라도 얻겄소? 근게 노인들이 오도가도 못 허고 있제.”

박씨의 말을 듣다보니 슬레이트 지붕을 인 마을의 집들이 더욱 왜소해 보였다. 마을은 아파트 공사가 언제 시작될지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 주민들이 나무그늘 아래서 한담을 나누는 200년 된 왕버들도 도로공사가 시작되면 베어질 운명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마을에 자랑거리가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임정마을 하면 소나무로 만든 ‘마을 수문장’ 벅수(장승)를 빼놓을 수 없다. 마을 지형이 지네가 숲 속에 엎드리고 있는 오공복지(蜈蚣伏地) 형국으로, 지네와 상극인 닭이 비치면 마을이 큰 재앙이 온다고 해 지금의 벅수를 세워 기를 다스렸다. 닭은 오행 상 유방(酉方) 즉 서쪽을 가리킴으로 벅수를 마을 서쪽에 세웠다고 한다. 이 벅수에는 재미난 얘기가 전하는데 마을에 도둑이 들면 도망가지 못하고 마을을 뱅뱅 돌다 훔친 물건을 그냥 두고서야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마을 지형이 지네가 숲 속에 엎드리고 있는 오공복지 형으로 지네와 상극인 닭이 비치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해 마을 서쪽에 벅수를 깎아 세웠다.
마을에서는 1970년대 초에 잠시 없어졌다가 1987년부터 매년 벅수제를 지내오고 있다. 특이한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 종헌관으로 제의를 주관한다는 점이다.   

전부일 중장도 마을에서는 내로라하는 인물이다. 2004년 타계한 전 중장은 박정희와 육사동기로 전역 후 병무청장을 지냈다. 마을 복지회관 앞에는 전 중장의 효행비와 회관 터를 희사한 뜻을 기려 주민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국내 민속학계에서는 꽤 알려진 임정마을 벅수제도, 200년 된 왕버들도 아파트에 도로에 떠밀려 그 자취를 찾아볼 날이 오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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