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보고 달리던 토끼가 사는 마을
달 보고 달리던 토끼가 사는 마을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10.27 11: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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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북구 망월동 분토마을 이두남 할아버지

북구에서 가장 유서 깊고 큰 마을
고인돌, 고분군 등 볼거리 다양해

▲ 이두남 할아버지가 마른 짚으로 솜씨 좋게 이엉을 엮고 있다.
무등산 산장 가는 길 청풍유원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꺾어들면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에 저절로 차의 속도가 늦춰진다.

양쪽으로 짓쳐 내려가는 무등산 산줄기 사이로 자리한 넉넉한 들녘은 누렇게 익은 벼를 탈곡하는 기계음으로 요란하고, 가로수와 마을 안 감나무는 완연한 가을햇살에 잎과 열매가 붉게 물들어가며 만추(晩秋)의 서정을 느끼게 한다. 가히 누구라도 위로받을 만한 풍경이다.

87번 시내버스 종점을 지나 한참을 더 구비 돌다가 정안사, 분토(粉土)마을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접어든다.

마을 초입에 선 오래 된 팽나무가 제일 먼저 길손을 반기는데 보호수 표지판에 ‘마을에 술주정꾼이 살고 있었는데, 이 나무에서 신령이 나타나 꾸짖은 후 마을이 평화로워졌다’고 쓰여 있다.

마을은 여느 시골답지 않게 새로 지은 번영회관과 경로당이 따로 있고 다양한 형식의 집들이 꽤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북구에서는 꽤 알아주는 부촌(富村)이란다. 번영회관 복원비를 보니 재원확보의 어려움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일사일촌의 인연을 맺은 농협중앙회 광주본부의 지원금과 노인회 자금, 정안사와 화순 달마사의 후원금으로 뜻을 이루었다고 적혀 있다. 어지간한 마을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마을 유래는 토끼가 달을 보는 형국, 즉 옥토망월형(玉兎望月形)에서 유래한 망월동(望月洞)과 연관이 깊다. 분토(奔兎)란 토끼가 달을 보고 달린다는 뜻인데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지금의 분토(粉土)로 굳어졌다. ‘달을 보고 달리던 토끼’라는 마을이름이 졸지에 ‘흙가루’로 바뀐 것이다. 이는 모두 한민족의 공동체 정서와 뿌리를 지우려는 시도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주요 성씨로는 석씨, 문씨, 박씨, 김씨가 있는데 선조가 무려 14대에 이르러 조선시대 초기부터 여러 성씨가 모여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 마을 앞으로 석곡천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무등산의 넉넉한 품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 구경을 하는 중에 날이 추워져 애완새 둥지에 덮을 것이라며 마른 짚으로 이엉을 엮고 있던 이두남(79)할아버지를 만났다.  “마을 앞으로 당산나무가 다섯이여. 400년은 되았다고 허드만. 마을이 오래 됐제. 호수도 많애. 120여 집이나 돼. 북구 관내에서는 제일 큰 마을이라는구만.”

이 할아버지는 솜씨 좋게 이엉을 짜나가면서 마을 자랑을 해달라고 하자 하등의 망설임이 없다. 슬하에 아들 넷, 딸 하나를 두었다는 이 할아버지는 11년 전에 분토마을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원래는 나주 남평이 고향인디 50년을 떠돌며 장사를 했어. 채소장시, 고물상, 점빵 안 해 본 것이 없어. 인자 자석들 장성하고 내우 간 공기 좋은 디서 편하게 살아보자고 들어 왔제. 근디 아파트 안 같고 집터가 넓응께 매일 꼼지락 대야듸야.”

그래도 어디 꽉 막힌 아파트 생활에 비할까.
“경로당 노인들끼리 1년에 2번씩 놀러 다니고 명절이믄 청년회에서 노인잔치 열어주고 시상 좋아. 나도 마을에 무슨 일 있으믄 더 했으믄 더 했제 덜 하질 않아. 장사만 50년을 했는디 동네 사람들하고 어울릴 라믄 그런 눈치는 있어야제.”

사람 좋은 표정의 이 할아버지는 새로 정착한 마을에 꽤 정이 든 기색이다. 마을이 외진 곳인데도 교통편이 그리 나쁘지는 않다.  “그 전에는 마을 앞에가 5번 종점이 있어서 5분 만에 버스가 한 대씩 다녔어. 근디 탈 사람이 얼마 없응께 인자는 87번 버스가 25분마다 한 대씩 다녀. 그래도 그것이라도 있응께 말바우시장도 다니고 얼마나 편하제.”
   
▲ 가을정취가 물씬 나는 정안사 경내.
오래된 마을답게 마을 곳곳 구석마다 볼거리들이 적지 않다. 선사시대 고인돌과 고대고분군을 비롯해 문화재로는 정지장군 예장석묘(광주기념물 2호)가 있고 마을 뒤편 산자락에는 정안사라는 고즈넉한 절이 있다.  “4월 초파일이믄 3천 명씩 온다드만. 생긴 지는 얼마 안 돼았는디 꽤 큰 절이여. 마을 노인들도 많이 다녀.”

마을 앞으로는 석곡천(石谷川)이 유유히 흐르고 앞을 보아도 뒤를 돌아도 언제나 푸르른 무등산이 바라다 뵈는 분토마을 위로 그 옛날 토끼가 따라 달렸다던 달이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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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ㄱㄱㄱ 2010-11-13 15:09:30
정말 아름다운 분토마을입니다 처음 마을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분토라 해서 먼 분한일이 있어 분토당가하는사람도 잇어요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