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넘어 무식을 드러내는 기쁨
부끄러움을 넘어 무식을 드러내는 기쁨
  • 이홍길
  • 승인 2010.10.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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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전남대 명예교수

특별히 급박한 현실도 덜컹거리는 사연도 없는 밋밋한 노년의 삶에게 있어서는 차라리 한가한 주변 잡사를 읊조리는 것이 제격일 것 같다.

물론 남북의 긴장 국면이나 양극화의 심화에서 오는 사회적 불안감이나 어처구니없는 ‘낙지파동’같은 것이 우리들의 삶에 나의 삶에 무관하다고 할 수 없으나 촌철의 힘도 없는 시골초부에게 거창한 웅변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을 성 싶다.

더구나 얼마 전 어느 공개 강연회장에서 60년대의 ‘왕사주라’ 논의를 소개했다가 지역폄하라고 비약하는 지적을 받은 본인에게 거창한 이야기보다는 그야말로 주변잡사가 제격일 것 같다.

불치하문,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성현의 말씀을 종종 쉽게 뇌까렸던 필자이지만 그것을 즐겁게 실천했던 경험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근래 이황 퇴계선생의 호가 지어진 내력을 접하고서야 때늦게나마 각성한 것이 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기십 년의 교직생활에 학자라는 외양을 갖추고 세상을 살아온 필자에게 무식을 손쉽게 그것을 자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었다. 많은 것을 아는 것과 유식함은 틀림없는 학자적 조건인데 그 외양을 갖춘 채 자신의 무식을 드러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끔찍하기만 했다.

그런데 다 몰라도 자신의 무식을 자신은 잘 안다.
배워서 때로 익히는 것은 면학의 기본임에도 교사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배움을 한정한 결과 때로 익히라는 가르침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 결과 그것을 체화할 기회를 영영 놓쳤는데 언감생심 학행일치가 온전했을까 가능했을까?

그럼에도 선생은 질문에 답해야 하고 학자는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지식은 바다와 같아 한 사발 뚝 떠서 줄 수가 없다. 삼라만상은 얼마나 많고 진리의 가닥잡기는 왜 그리도 어려운고. 그런데 학자라는 방어의 갑옷 때문에 무식한 속내를 드러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대답을 한다. 모양을 갖추어서 제시해본다.
그러나 본질을 들춰내는 것이 쉽지 않아 모양새만 그럴싸한 사이비가 된다.
검증받지 않은 사이비 진실이 난무하게 되는데 그 궁극적 책임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짊어지게 된다.
지식인의 언어가 엄중함을 일깨우는 선현들이 많았음에도 발언 강박증을 못 참는 지식인들 또한 끊이지 않는데 필자라고 꼭 예외라고 할 수는 없었으리라.

재삼재사 숙고하는 버릇이 아쉬웠음을 새삼 실감한다.
퇴계(退溪)는 이황의 호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 물가에 물러나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인데, 이황은 그의 호를 읊은 가운데 「냇가에 거주하기 시작하여 흐르는 물에 날마다 반성할 일이로세」라고 말하고 있었다.

조선 오백년을 대표하는 이황 같은 대성인이 무슨 잘못이 있어 매일 반성할 일이 그리도 많았을까 하다가 삶과 우주의 큰 이치를 찾는 방법을 자신을 돌아봄으로 삼지 않았을까 하고 유추해 본다.

경건함 속에 이치를 찾아 가는 것이 모범생의 길이겠지만 난무하는 생의 욕구를 컨트롤하는 것은 선인들의 삶을 표준으로 반성하는 길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이황의 반성은 필자의 반성을 촉구하고 필자의 무식을 덜 부끄럽게 만들어 「부끄러움을 넘어 무식을 드러내는 기쁨」을 실감하게 한다.

늦게나마 이황의 가르침을 접한 기쁨이고 지난 부끄러움 속에 허우적거리지 않아도 되는 꺼리를 장만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중국사를 전공한 본인에게 조선사상가 공부는 외행처럼 여겨 돌아보지 못하였는데, 평생지기 박석무 선생의 「조선의 의인」에 소개된 퇴계 이황을 읽은 감흥이 컸음을 장황하게 주절대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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