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치 100년에
국치 100년에
  • 김순흥
  • 승인 2010.08.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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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흥 (광주대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1910년 8월 29일. 단군의 개천 이래 오랜 세월 독립국가를 지켜온 우리가 부끄럽게도 외세에 주권을 빼앗긴 날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10년 8월. 35년간의 일제의 속박에서 벗어나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모두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남의 힘을 빌려 겨우 외세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것을 자랑하고 떠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나라를 빼앗긴 날의 의미를 되새기고 반성하는 일이 먼저일 텐데, 어디를 봐도 광복에 대한 경축은 있으나 국치일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국치일의 의미는커녕 8월 29일이 국치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

부담스런 ‘반성’은 애써 덮고 ‘축하’만 하면 될까?

치욕스러운 날이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살펴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국치 100년을 맞으면서 우리사회를 되돌아본다.

첫째, 지배층의 공동체의식은 어떤가? 과거 국치를 가져왔던 이전투구 식 집단이기주의는 없어졌는가? 정치인이나 재벌을 비롯한 지배층은 민족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그에 맞게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가? 자기 패거리나 자신만의 이해관계에 연연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회적으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계층은 그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국회청문회를 보면서 참담한 생각이 든다. 비리와 범법, 몰염치, 도덕적 불감증,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국민이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청문대상으로 앉아있다. 그들에게는 개인이나 패거리들의 이해관계만 있을 뿐 공동체의 지도자로서의 책임이나 역할은 찾아보기 어렵다.

둘째, 인류사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가? 산업사회가 끝나고 정보사회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충분히 변화에 대처해나가고 있는가? 산업사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추어 재빨리 변신한 일본과 달리 변화·적응하지 못했던 우리와 중국은 비슷한 치욕의 역사를 겪었다. 사회변화의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해 도태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동안 IT강국으로 정보사회에서 앞서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인문학의 기초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학적인 기술의 한계에 막혀있고, 기술 분야마저 기초부분에 대한 투자를 등한히 한 결과 주요 부품과 기술은 상당부분 외국에 의존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비중을 두었던 지난 정부와 달리, 정보통신부를 통폐합하고, 부총리가 이끌던 과학기술부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의 손에 맡겨놓을 정도로 뒷걸음질하고 있는 정부의 인식을 보면 지난날 산업사회 초입에서 당한 치욕을 다시 겪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다시 국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셋째, 반국가, 반민족, 반사회적인 행위 등 공동체의 파멸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에 대한 사회적 반성과 제재는 충분한가? 기왕 벌어진 일은 그렇다 하더라도 뒷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자기 패거리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매국도 마다하지 않고, 친일에도 앞장섰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과거에 대해 아직도 반성 없이 활보하고 행세하고, 그것을 용납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는 무엇을 말하는가? 되돌아보지 못하는 역사, 정리되지 않는 역사, 국치를 또다시 반복할 것인가?

광복 이후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 우리 역사의 큰 잘못이라는 지적을 기를 쓰고 외면하며 지금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가?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의 행태와 그것을 멀뚱멀뚱 마치 남의 일 보듯이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을 볼 때, 어제는 잊어버리고, 오늘은 머리를 비우고, 앞날은 생각하지 않는 조두(鳥頭)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국민의 올바른 평가와 준엄한 제재가 없으면 역사는 바로 서지 않는다. 국치 100년. 설마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는 않겠지 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요행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인지. 대답에 자신이 없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기우 때문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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