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고만 아니면 폴새 개발 됐제”
“탄약고만 아니면 폴새 개발 됐제”
  • 김경대 기자
  • 승인 2010.07.14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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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벽진동 월산(月山)마을 김춘곤씨

▲ 김춘곤 씨.
광주 서구 벽진동은 통일신라 때 행정구역 편제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통일신라는 3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9주(州) 5소경(小京)으로 나눴는데 광주는 무주(武州)라 불렸고, 하부 행정구역은 다시 향(鄕)·소(所)·부곡(部曲)으로 나뉘었는데 벽진동은 당시 4개 부곡 중 하나인 ‘벽진부곡(碧津部曲)’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벽진동은 공군탄약고와 서광주역 사이쯤을 가리키며 기자가 찾은 월산(月山)마을은 벽진동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 뒷산 등성이에 뜨는 달이 곱다하여 월산이라 불렀다는 마을은 150년 전 조선조 말기에 형성된 것으로 사료는 기록하고 있다. 맨 처음에는 이천 서씨와 제주 양씨가 들어와 살다가 그 뒤를 충주 박씨가 이었고 지금은 여러 타성받이가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이 됐다.

2순환도로 변에 위치한 학두마을에서 벽진천(川)을 건너 바라다 뵈는 월산마을은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듯한 산등성이 아래로 50여 호 남짓한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산다.

주민들의 주업은 벼농사였으며 산지목초가 풍부해 한때는 축산농가가 번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시화를 겪으면서 논은 대부분 수용되거나 외지인들 몫이 되었고 주민들은 날품 일이나 희망근로에 기대 생계를 잇고 있다.

“예전 나 어렸을 적엔 매월, 풍암, 금호 이런 반디는 장화가 없으믄 돌아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오지였어. 우리 마을은 서창 면소재지도 가까웠고 그짝에다 대믄 양반이었제. 근디 딴디는 다 개발이 되고 여그는 철로며 순환도로가 놓이면서 산중골짝이 되브렀어.”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김춘곤(71)씨의 말이다.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는 비교적 벽진동 일대의 과거사를 소상히 꿰뚫고 있었다.

▲ 마을 뒷산 등성이에 뜨는 달이 곱다하여 월산이라 불린 마을은 아이러니하게도 공군탄약고 때문에 옛 시골의 정취를 그대로 지키며 살고 있다.
“탄약고는 6·25때 인민군 포로수용소 자리였어. 인민군들이 여기까지 밀고 내려 왔었제. 살벌했어. 내가 11살 땐디 우리 마을도 무등산 수만리로 피난을 갔었어. 근디 거그가 반란군들 소굴이더랑께. 암귿도 모린께 그랬제. 탄약고는 전쟁 끝나고 수용소 자리를 더 확장해서 지었제.”

김씨 어르신은 “탄약고만 아니면 여그도 폴새 개발이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탄약고 옮긴단 소리는 10년 전부터 들었네. 근디 말짱 황이여. 박광태 시장이 탄약고 자리에다 돔구장을 짓는다고 해서 기대를 했더니만 시민단체에서 떠든 통에 물 건너 가브렀제. 지금은 뭣 온다는 소리도 없어.”

옛 시골의 태(態)가 그대로 남아있는 월산마을은 변변한 건물하나 없이 무덤처럼 뙤똥한 탄약고와 백로가 날아다니는 논, 비포장 도로, 몇몇 가구업체에서 운영하는 창고 등이 어지러이 뒤엉켜 있다.

“시상에 지금 광주바닥에 버스 없는 곳이 어디가 있겄어? 서광주역에 4개 버스노선이 있는디 마을 앞으로는 안 지나가. 버스를 탈라믄 공항 가는 큰 길까지 2km를 걸어야 해. 강운태 시장이 버스노선을 조정한닥 헝께 함 기다려 봐야제.”

‘산중골짝’이 돼버렸다고 연신 탄식하시던 김씨 어르신은 낙후된 마을환경이 못마땅하신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벽진천까지를 도마 위에 올렸다.

▲ 풍암저수지에서 넘쳐흐르는 벽진천은 비가 올 때면 풍암, 금호동 도심의 먼지와 쓰레기를 쓸고 내려오는 통에 온통 물빛이 시커멓다.
“풍암저수지에서 내려온 물이 탄약고 사이로 흐르는 디 이름이 벽진천이여. 그 물 갖고 농사도 짓고 하제. 근디 비만 왔다하믄 풍암동, 금호동 도로를 씻어 내린 물이 시커멓게 내려 와. 아조 징해.”

마을 경로당 안방에 붙어있는, 동사무소에서 쓴 마을소개 액자가 눈에 띄었다. ‘인근 지역에 도심철도가 운행되는 서광주역과 제2순환도로가 개통되어 점차 도시화되고 있으며 향후 공군탄약고가 이전될 경우 도시개발 및 많은 인구 증가로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지역이다.’

단, ‘탄약고가 이전될 경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탄약고만 이전된다면 언젠가는 광주 최대의 신도심인 상무지구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울울창창한 빌딩숲이 사위를 덮을 것이다. 그럼 탄약고는 언제 이전될까. 공군비행장이 이전되면 자연스레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럼 공군비행장은? 질문은 꼬리를 문다.

70, 80대 노인들 뿐인 마을 주민들이 당장 보고 싶은 것은 먼 미래의 으리번쩍한 빌딩숲이 아닐 것이다. 조금 걷고 시내버스 한 대라도 시간 맞춰 탈 수 있다면 남은 생애가 조금은 더 행복할 거라는 상상을 하며 마을을 돌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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