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자, 마지막날 새벽 '광주' 읽어내기
낯선 여행자, 마지막날 새벽 '광주' 읽어내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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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열흘간.
그 마지막 날인 1980년 5월27일 새벽 4시 광주 금남로 전남도청 앞은, 아니 '도청'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꼭 21년 후인 2001년 5월27일은 어떤가. 따가운 햇살 속에 이날 광주의 하루는 매우 평온하게 지났다.

그런데 새벽 4시 바로 그 시간, 그 자리. 전남도청 정문 광장에선 이곳으로 겨울여행을 떠나온 낯선 5명 여행자의 기다림과 만남을 향한 작은 몸짓이 아직 동이 트지 않은 깜깜한 어둠 속을 밝혀내고 있었다. 신영철씨(47·예기 플라타너스 대표)가 구성·연출한 '겨울여행2-마지막여행' 거리공연이 도청 현관 앞에서 펼쳐진 것이다. 공연이라기 보다 그날 광주 영혼의 숨결을 느끼려는 여행자의 제의였다.

광주 영혼 느끼려는 여행자 제의(祭儀)

낯선 여행자는 서울에서 내려온 4명의 연기자와 1명의 작가. 그들은 80년 5월 열흘간의 마지막 날인 27일 새벽 4시에 광주에서 어떤 영혼과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기대하면서 도청 건물을 일부러 찾은 것이다.

관람객은 열명이 채워지지 않았다. 보아주는 이 없는 공연. '광주' 모노로그였다. 낯선 여행자가 읽어내려는 광주와, 5월 그날을 현장 체험한 광주시민의 냉담한 반응. 광주는 21년 세월 속에 이렇게 혼재하고 있다.

이들 일행 중 1명의 작가는 바로 신씨. 공연을 이끌고 있는 입장인데 "관람객은 의식하지 않는다. 광주를 얻기 위해, 배우기 위해 이런 기회를 만들어 온 것이다"라고 정리했다. "광주에 와서 광주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 좋다. 하늘로부터 배운다".

망월묘역 공연을 끝낸 26일 밤9시. 낯선 여행자는 공연 소품으로 사용했던 커피를 끓여 관람객과 나누어 마신다. 이날 공연을 참관했던 관람객의 전부다.
광주 하늘 보는 것만으로 좋다

그가 사는 방식이요. 과정이다. '왜 사는가, 존재하는 이유가 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러면 답이 하나로 정리된다.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인가'.

그래서 그가 만드는 작품은 꼭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관람객을 대상으로 놓고 하는, 연기자 위주 공연이 아니다. "○년 ○월○일 무엇하고 살았느냐"고 자문하고 답을 낸다. 이번 '겨울여행2'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그동안 광주를 소재로 한 '광주 연작'을 4편 만들었다. 17주기인 97년부터 '51817'(5·18 17주기라는 의미), '지워진 소외'('98), '후이넘2-광주'('99), '잊지마세요'(2000) 등. 이 작품들은 영화로 제작해 27일 오전11시부터 민들레소극장에서 상영도 했다. 어쨌든 광주를 소재로 그가 만든 작품은 이번 공연이 5번째로, 광주 연작 완결편이면서 '겨울여행 연작'이기도 하다.

'마지막 여행'이라는 부제도 그는 '답답해서 붙였다'라고 했지만 완결의 의미도 내포한다. 겨울여행 첫 편은 광주와 직접 연관은 없지만 '기다림'을 주제로 한 작품. 그래서 광주 영혼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것을 주제로 '겨울여행2'를 지난해 가을부터 구상하기 시작했다.
'겨울여행2-'를 잠깐 되돌려보자.

희망을 갖고 떠나는 여행자 모습

줄거리는 '광주'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5월 광주 이야기를 기대하면 실망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여행자의 기다림과 실천의 모습이 자유롭게 이어지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용기를 준다. 그래서 희망을 갖고 떠나는 여행자들 모습. 그리고 그들이 만나 실천하는 기다림의 확신은 인간을 향한 아름다움이다. 자기 실리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을 탄생시킨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논리를 은유적으로 토해내고 있다.

27일 새벽 4시34분. 도청 전광판 시계가 선명하다. 여행자들이 함께 연줄에 별을 담아 하늘로 띄운다.
이러한 '광주 연작'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는 '광주'라는 단어를 광주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권, 정의, 사랑이라 정의하고 그의 작품에서도 그렇게 봐 달라고 주문한다.
80년 5월 당시, 그는 신문기자였다. 언론의 진실 왜곡을 목격한 뒤 "광주는 내게 '짐'으로 지워진 채 살고 있다"고 말한다. 혼자서 그냥 그 짐을 푸는 작업을 지난 1996년부터 힘 되는대로 실천하고 있다.

'광주'라는 짐은 광주 것만이 아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는 게 그로선 안타깝다. 더구나 광주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쓸쓸하다.

이번 공연을 위해 그는 26일 새벽 4시에 광주역에 도착, 전남도청 앞까지 걸었다. 광주를 호흡하기 위해서다. 다음날인 27일 새벽 공연 시간을 미리 가늠해보려는 생각도 함께였고. 27일 새벽 공연에 앞서 26일 밤8시 망월묘역에서 '겨울여행2'를 공연했다. 그때도 관람객이 모이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민들레소극장 영상회도 물론이고.

26일 망월묘역에서 공연을 준비하던 신씨는 "올해는 광주 5월 마지막 날 분위기가 여느해보다 쓸쓸하다"고 표현했다. '너무 조용해서'라고 표현했지만 더 깊은 뜻으로 전달됐다. 올해로 광주 공연은 3번째. 서울에서도 '광주'공연을 계속 해온 터라 그의 느낌은 비교적 정확하다.

광주문제 해결 제3자가 나서야

관람객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참여할 배우 모집도 점차 어렵다. 광주이야기라면 호응도가 낮아진단다. "나 아닌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엷어지는 때문"이라 보는 그는 여기서 "무슨 문제든 제3자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애쓰면 쉽게 풀리는데…"라고 말한다.

그가 '짐'으로 지고 있는 광주이야기도 "광주와 연고 없는 사람이 이를 보듬으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공연에 관람객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는다. 거리공연을 하는 이유도 해당된다. 길을 가던 행인이 공연 현장을 스치듯 지나면서도 '뭔가 느껴진다"고 공감하면 그는 만족한다. 그런 행인이,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는 도중 무대로 뛰어들어 배우로 참여하는 것도 환영한다.

그가 거리공연 때 무대 중간에 공간을 비워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마지막여행' 길에서는 그런 관람객을 만나지 못했다. 해서 그는 광주 하늘을 떠도는 영혼과 만나는 기다림의 희망을 찾아 또 여행길에 오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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