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라넷’ 아닌 ‘인터넷사이트’를 꿈꾼다
‘인트라넷’ 아닌 ‘인터넷사이트’를 꿈꾼다
  • 박경신
  • 승인 2010.01.2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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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고려대 교수)

▲ 박경신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
우리나라의 인터넷실명제는 우리나라 인터넷을 ‘인트라넷’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포털들이 요구하는 주민등록번호를 가진 사람들만이 발언권을 가지게 되는 인트라넷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한꺼번에’ 소통할 수 있다는 인터넷의 본질이, 1일 평균 사용자가 10만 명 이상인 우리나라의 주요 인터넷사이트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터넷사이트의 모습은 인터넷을 통한 소통과 문화의 발전을 심하게 위축하고 있다. 실명제 실시 이후 해외에서 또는 익명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사람들의 참여가 제한되면서 우리나라 인터넷의 공개콘텐츠 질은 계속 저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수많은 인터넷사이트들이 상호 실명을 제공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 사이의 자발적인 합의 하에 실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소송은 웹사이트 운영자들과 사용자들 사이의 자발적 실명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6은 실명사용에 합의할 마음이 없는 운영자들과 사용자들에게 실명공개를 강제한다는 것이 문제다.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에 따라 포털들이 모든 게시글에 붙어 있는 실명을 영장도 없이, 게시자에 대한 고지도 없이 수사기관들에 넘겨주고 있어, 실명이 스크린에 떠있지만 않을 뿐 글쓰기를 할 때마다 실명을 국가에 등록하는 ‘순수 실명제’라고 봐야 한다.

구글이 최근 고객의 프라이버시보호 어려움을 이유로 중국에서 철수했는데, 만약 구글이 실명제를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고객의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겨줘야 되는 아픈 경험을 했다면 똑같은 일을 한국시장에서 했을지도 모른다.

‘떳떳하면 왜 실명공개를 못하는가’라고 다그칠지 모른다.

길거리를 걷는다는 이유만으로 신원공개를 요구당하면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불쾌해할 것이다. 길거리 범죄를 막겠답시고 길을 걷는 사람들 모두에게 주민번호가 적힌 이름표를 달고 다니도록 강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해 보라. 길에 나가기 자체를 꺼려할 것이다.

물론 강제적 실명제가 필요할 때도 있다. 부동산실명제와 금융실명제는 사기 및 탈세의 위험성 때문이다.
자동차에 번호판을 달도록 하는 것은 자동차의 파괴성과 이동성 때문이다.

청소년유해물을 보는 사람에게 주민번호를 강제해 성인 인증을 하는 것도 이를 청소년이 보았을 때의 유해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자동차 운전, 금융거래처럼 위험한 행위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도리어 익명의 글쓰기는 사상의 전파라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이 있더라도 보호되어 왔다.

온라인 글쓰기라고 다를까? 온라인 글은 수십 만, 수백 만 명이 볼 수 있거나 퍼 나를 수 있지만, 이것은 게시자의 통제 밖의 일이며 방송과 달리 독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다.

인터넷실명제를 실시하면 불법게시물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물론 강제적인 실명제사이트에서 불법게시물의 비율이 줄어들 수는 있다.

불법게시물을 의도적으로 올리고자 하는 자들이 자신이 추적될 위험 때문에 위축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의도적으로 불법게시물을 올릴 사람들은 자신의 실명과 주민번호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편견과 탄압을 피하기 위한, 수많은 합법적 게시물들이 자기 검열될 것이다. 이것은 자발적인 자제가 아니라 감시 때문에 강제로 위축되는 것이다.

실명제 실패 이후 가장 공론이 필요한 사안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제기하는 인터넷 논객들은 상당수 사라졌다. 결국 무죄판결을 받기는 하였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을 명쾌하게 비판했다가 100일 이상 감옥에 갇혔던 미네르바도 이 들 중 한 명이다.

이들이 자유롭게 돌아올 수 있는, 글을 올린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름을 정부에 등록할 필요 없는, 실명도 익명도 누리꾼들이 서로 합의하여 선택할 수 있는 인터넷세상을 꿈꾼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1월 25일 ‘제한적 본인 확인제(=인터넷실명제)’가 인터넷 이용자들의 익명표현의 자유와 인터넷언론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자기정보통제권, 평등권 등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는 결정을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기사제휴 언론사인 <민중의소리>에서 옮겨와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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