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과 예술의 거리
인사동과 예술의 거리
  • 전영원
  • 승인 2009.12.18 21: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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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원 (철학 대안학교 ‘지혜학교’ 이사)

태어나서 서울 인사동을 꼭 한 번 가 봤다. TV나 잡지, 신문 등을 통해 수도 없이 보고 읽었지만 직접 가 본 것은 삼사 년 전 이맘 때였다.

볼거리, 살거리, 먹을거리에 한 눈을 파느라 정신줄까지 놓아버린 하루였다. 미술품, 골동품이나 실컷 보려고 찾았던 인사동은 한겨울 추위와 상관없이 사람구경까지 실컷 할 수가 있었다. 굳이 휘황찬란한 루미나리에가 없어도….

길, 이 편 저 편에 있는 갤러리에 들어갈 때마다 깜짝 놀랐다. 웬 관람객들이 그리 많은지. 민화를 재해석한 그림 전시회장은 발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작가가 유명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남녀노소 적당히 어우러져서 크지 않은 전시장 안을 한 방향으로 천천히, 흐뭇한 미소들을 머금은 채, 진지하고 고요한 행진을 하고 있었다. 후끈하면서도 부드러웠던 전시장, 소근 거리면서 그림을 감상하던 그 곳 인사동 거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인사동과 딴 판인 예술의 거리

인사동 예찬을 하고 싶어서 귀한 지면을 할애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광주 궁동에 있는 예술의 거리이다. 이름도 멋진 ‘예술의 거리’!

사업장이 궁동 가까이 있다는 이유 말고도 원래 예술의 거리를 자주 찾는 편이다. 내게 예술의 거리는 좋아하는 그림을 보는 즐거움, 비싸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 개성 있는 옷가게들, 아기자기한 소품 매장들, 골동품, 액자가게, 미술관련 서점. 음악 좋은 찻집 등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특별히 아끼는 장소이다.

그런데 요즘 예술의 거리는 너무 쓸쓸하다. 그 곳에 예술품은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즐기고 아끼는 사람이 별로 없다.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바람이 사나워서, 날이 더워서, 추워서, 날이 너무 좋아서….

예술의 거리가 살아나지 못하는 행정적인 이유들, 경제적인 요인들, 정치적인 원인들, 사회적인 이슈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사람들이 핑계를 대고 있다는 이 느낌은 무슨 근거일까. 백화점이나 테이크아웃 커피숍, 와인바, 골프연습장, 헬스클럽, 피부관리실, 사우나로 가고 싶어서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전시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보다 더 배고팠던 70년대의 여고 시절에 보았던 천경자 그림들, 도무지 해석불가인데도 인산인해를 이루던 살바도르 달리 그림들을 예술의 거리 근처에서 처음 경험했다.

80년대, 그 살벌했던 시절에 봤던 민중미술 전시회는 세상을 새롭게 분석하던 젊고 어설픈 내게 지워질 수 없을 만큼 강하게 각인되어 여태껏 이 거리를 배회하게 만들었다. 목판화 작품만 보면 없는 돈을 모아서 사고 싶어지는 것도 그 때의 미적 충격 때문이리라.

광주의 멋과 향 잃을까 두렵다

예술의 거리가 초라해지진 원인을 따지고 분석하거나, 안 오는 사람들을 탓하지도 않겠다. 그런데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요즘 예술의 거리에는 구경꾼은 없고 이 지역의 가난한 화가들만 몰려다니더라고. 시민들의 온갖 핑계와 외면 앞에 당당하려 애쓰는 그들의 야윈 얼굴을 좀 보라고….

음식 솜씨 좋은 어머니의 딸들은 그 맛과 향을 평생 기억한다. 그 기억 덕분에 비슷한 맛을 낼 수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솜씨 없는 어머니의 딸들은 역시나 맛없는 음식을 열심히 만들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기억해낼 수 있는 음식이 거기까지니까.

후미진 식당이나 찻집에도 동양화가 걸려있던 예향 광주는 분명 솜씨 좋은 어머니였으리라. 전라도 출신이 가장 많다는 글쟁이, 그림쟁이뿐 아니라 그림을 좋아하는 나도 당연! 솜씨 좋은 그녀의 친딸일 것이고. 앞으로 광주가 예술의 맛과 향을 잃을까 두렵다. 기억할 수 없을까 겁난다.

함박눈 온다. 눈 핑계 대지 말고, 눈을 핑계로 예술의 거리에 가서 메마른 감성을 적셔보시라. 벗들과, 애인과, 가족과 함께, 혹은 자신의 고독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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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소한 일상 2009-12-19 20:51:24
    정말 신기한 것은 분위기이지요. 이곳 사람들도 인사동에 가면 모두들 이곳저곳을 기웃거려요..재미있다고들 하데요..이곳을 그렇게 만들려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인지..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한데도 말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