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식도 MB코드에 맞춰야 하나
5·18기념식도 MB코드에 맞춰야 하나
  • 최용선
  • 승인 2009.12.0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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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선(한국 공공데이터센터 연구실장)

얼마 전 행정안전부가 공무원들의 민중의례를 금지시키는 공문을 전국 정부기관에 발송했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공무원노조 간부들에 대한 징계절차도 진행 중에 있다.

운동권들이나 부르는 노래를 공무원들이 부르는 것이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 의무’에 위반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도대체 공무원들에게 요구되는 품위와 품격의 내용과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 공무원 품위 규정이 과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적용되던 ‘막걸리 보안법’도 아니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이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어떻게 손상한다는 것인지는 앞으로 법적으로 제대로 따져볼 일이다.

문제는 공식적인 의례가 강조되는 국가행사도 아니고 공무원 노조의 자체행사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말지도 국가권력이 감시하고 통제하는 야만의 사회로 역사의 시계바늘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 ‘민주정권 역사 지우기’인가?

이와 궤를 같이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아예 퇴출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달 30일, 5·18 민주화운동 30주기를 맞아 기념식에 공식적으로 쓰일 새 추모곡 제작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5·18기념행사 이전까지 작곡가들의 공모 방식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노래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지난 2006년에도 비슷한 검토를 한 바 있다. 하지만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게 폭력의 당사자가 나서서 추모의 방향과 내용을 담은 노래를 주도해 만든다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일까. 당시엔 이번처럼 절차가 일방적이지 않았다.

보훈처가 주도적으로 나서기보다 ‘5·18기념재단’이 중심이 되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쳤다. 물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쳐두고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별도의 노래를 만들 필요가 있냐는 지역의 강한 반대여론에 부딪쳐 없던 일이 됐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이런 일들이 다시 벌어지는 것일까. 

광주 민주항쟁의 역사와 정신이 오롯이 깃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시대적 아픔과 저항의 역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야만의 시대를 건너온 세대의 징표다.

이 노래가 국가기념일로 격상된 5·18 기념식행사에 추모곡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다. 기념식에 참석한 고 노무현 대통령은 군악대의 연주에 맞춰 악보도 보지 않고 끝까지 합창했다.

그리고 얼마 뒤 열린우리당 386출신 국회의원들과 청와대 만찬 때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는 것이 알려지자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온갖 언어로 정치적 공세를 퍼부었다.

권력찬탈을 위해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던 쿠데타세력을 ‘구국의 결단’으로 찬양하던 이들은 여전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폭동’과 ‘소요사태’를 부추기는 선동가요쯤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련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금지를 넘어 민주화와 민주정권 성과에 대한 지우기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잘살아보세’를 부르자고 할 텐가

작년 봄 이 대통령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는 ‘촛불집회’때도, 올해 용산 철거민들의 억울한 죽음에 항거하는 집회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옆에 손잡고 있던 이들을 이어주는 무형의 끈이었다.

그리고 내년에도 4대강 정비 사업에 반대하는 이들에게서, 세종시 원안 수정을 반대하는 국민들에게서, 노동인권을 탄압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통해 더 많이 퍼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민주정권 10년의 역사를 지우고 80년대 군부독재시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커져가고 있는 오늘,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빨리 온다’는 격언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이 다시 묵직하게 다가온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동지들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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