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과 역사의 정의
친일인명사전과 역사의 정의
  • 김순흥
  • 승인 2009.11.2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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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흥 (광주대 교수,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

2009년 11월 8일 효창공원 김구 선생 묘소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가졌다.

반민특위 와해 60년 만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청산의 깃발을 든 지 18년 만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족한지 8년 만에, 굴절되고 비뚤어진 민족사를 정립할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 국가가 외면한 미해결 과제를 국민이 직접 나서 해결한 것이다.

국회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되고, 후손과 극우단체들의 벌떼 같은 항의와 가처분신청 등 갖은 방해와 대응에도 꺾이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되어 결실을 보게 되었다.

발표하는 날까지도, 극우단체들의 항의와 방해를 받아 예약된 장소의 대관이 취소되어 행사장소를 옮겨야 하는 우여곡절을 겪을 정도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금과 자발적으로 가입한 오천 회원들의 힘, 열악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낸 연구원들의 땀과 집념이 역사를 정리하는 초석이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하는 ‘친일문제연구총서’ 중 ‘인명편’인 이번 사전에는 매국 행위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을 탄압한 반민족 행위자, 일정 직위 이상의 부일 협력자 등 4,389명의 친일 및 해방 후 행적이 수록됐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수많은 명사(?)들의 친일행적이 망라되어 정리되었다. 심지어는 정부에서 독립유공자로 선정한 사람도 스무 명이나 들어 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나자마자 조·중·동과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친일잔재 세력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온갖 해괴한 논리로 친일인명사전 흠집 내기에 안달하고, 민족문제연구소와 간부진들을 향해 치졸한 색깔 공격을 퍼붓고 있다.

어제는 국가정상화위원회라는 단체가 친북인명사전 편찬 계획을 발표했다. 수구세력들이 늘 해오던 색깔공격이다.

짝퉁이 생기면 오히려 명품의 가치가 높아지듯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의 가치가 더욱 빛날 것 같다.

친일인명사전을 두려워하는 까닭

왜 그렇게 친일인명사전을 두려워하는가?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토에 대한 경종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편찬 취지가 ‘고백적 자기성찰’에 있고, 편찬 목적이 “개인에게 책임과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정리와 역사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역사의 교훈을 남기기 위한 데 있다”라고 했다.

그동안 무슨 일을 저질러도 시간만 지나면 적당히 넘어가 버리던 우리 사회에, ‘후세를 두려워하는 풍토’가 될 수 있도록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친일인사는 당대는 물론 후손들까지도 떵떵거리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빌어먹는 잘못된 역사.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은 채 방치해왔던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친일행적보다도 더 큰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의 응징이 없다면 눈앞의 이익을 좇아 나라도 팔고 민족도 팔아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행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두려워하고 후세의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반사회적, 반민족적 행위를 망설이고, 역사가 있기에 힘들고 어렵지만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일을 자랑스럽게 해나간다.

‘반민주화 인명사전’, ‘반통일 인명사전’ 준비할 때다

친일인명사전이 갖는 의미는 과거에 대한 정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반드시 역사의 응징이 따른다면 오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제 친일이라는 오래 묵은 문제에 대한 정리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으니, 오늘 우리들의 코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민주화를 방해하고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들에 대한 경종이 있어야 한다.

‘반민주화 인명사전’과 ‘반통일 인명사전’을 계획하고 준비하면 민주화와 통일에 걸림돌이 되는 많은 것들이 자정되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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