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숲은 생태박물관이다
마을숲은 생태박물관이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8.0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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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마을숲을 복원하자
⑫전남 완도군 완도읍 정도리 구계등 방풍숲

완도대교를 건너기 전까지는 해남 땅이다. 따라서 완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남 남창을 지나야 한다. 남창 오일장의 생선 비린내를 맡으면서 만나는 바다는 질퍽하다. 그 바다를 의지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도 질퍽할 것이다. 그 질퍽한 바다는 완도대교를 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서서 정도리까지 가는 길 내내 이어진다.

정도리에 들어서면 항상 기분이 좋다. 아니 정도리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설렌다. 무엇보다 정도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숲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도리에 가면 대개 구계등만 보고 온다. 물론 구계등도 좋다. 아홉 계단을 이루었다는 자갈밭의 길이가 무려 750여m에 이른다. 활처럼 굽어진 해안선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갯자갈 구르는 소리도 정겹다. 구계등에서는 파도소리보다 갯자갈 구르는 소리가 더 크다. 파도가 올라왔다 내려가는 동안 갯자갈이 따라가면서 재잘거린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 같다.

정도리 마을숲은 구계등 언덕바지에서부터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그 너머로는 농경지와 주거지가 이어진다. 바람과 파도를 막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그래서 ‘구계등 방풍숲’으로 불린다.

이 숲속에는 딱따구리, 박새, 직박구리, 노랑턱멧새, 오목눈이, 꾀꼬리, 방울새, 멧비둘기 등 새도 많이 산다. 그들이 좋아하는 곤충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좋은 자연학습장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숲으로 난 산책로는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둘만의 데이트를 오붓하게 즐길 수 있다.

▲ 바다에서 바라본 구계등 방풍숲. 숲 너머로 경작지와 마을이 이어진다.

바람과 파도로부터 마을을 지켜준 숲


마을 쪽에서 보면, 구계등 방풍숲은 주거지와 농경지 너머로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 가로막고 서 있다. 바다에서 들이닥치는 해일과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숲의 서쪽 끝에는 생달나무와 소나무로 둘러싸인 당집(할머니당)이 있어 마을 수호신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숲의 규모는 길이 800m, 폭 80m 내외, 면적 6.5ha에 이르며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소사나무, 새우나무, 말채나무, 까치박달, 쇠물푸레, 생달나무, 붉가시나무, 후박나무, 감탕나무, 광나무, 상동나무, 예덕나무, 소나무, 곰솔, 동백나무, 사스레피나무, 덜꿩나무, 조릿대 등 230여 종의 수목이 함께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는 이 숲속에 자연관찰로를 만들고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아놓아 탐방객들이 숲의 생태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관찰로 중간 중간에는 ‘갯돌소리 들리는 정도리 관찰로’, ‘정도리 구계등 방풍숲’, ‘정도리숲에 사는 새’, ‘다도해의 덩굴식물’, ‘상록활엽수림’ 등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자연학습장이 되고 있다. 숲 너머로는 몽돌해안이 이어진다.

또한 마을 동쪽 동산 꼭대기에는 붉가시나무와 곰솔로 이루어진 당숲이 조성되어 있는데, 주민들은 이곳을 ‘할아버지당’이라 부른다.

이 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밤에 구계등 방풍숲과 당숲에 있는 당집에서 당제를 지내고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최영부 (79)씨는 “지금은 마을 노인당에서 제물을 장만하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제사 모시는 사람’ 7명을 선정하여 7일 전부터 할아버지당에 있는 ‘헌식당’에서 살면서 술을 빚고, 나물을 앉히고, 떡방아를 찧어 제물을 장만하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제사 모시는 사람에 선정되면 화장실에만 다녀와도 목욕을 하고, 여자들은 제물에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에 남자들이 직접 장을 보고, 떡방아를 찧고, 나물을 무치고, 밥을 지어 제물을 장만한다.

제물로는 소머리, 돼지고기, 생선, 포(상어포, 명태포), 나물, 탕, 메, 시루떡 등을 올리며, 할아버지당에서는 농사풍년을 기원하고 할머니당에서는 풍어와 해초가 잘 되기를 기원한다. 이는 마을의 주업이 땅 농사 절반, 바다 농사 절반이기 때문에 당할아버지에게는 벼와 밭작물의 풍년을 기원하고, 당할머니에게는 톳, 미역, 우뭇가사리 등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마을주민들은 구계등 방풍숲과 할아버지당숲을 마을의 운명과 동일시한다. 그리고 두 곳의 숲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다. 구계등이 1973년 명승 제3호로 지정되고, 1981년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금은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마을에서 ‘산감’을 뽑아 수당을 주면서 숲을 지키게 할 정도였다.

마을에는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할 때 이곳에 울창한 숲과 구계등이 있다는 사실을 신라의 조정에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며, 20여 년 전 갓 시집온 어느 집 며느리가 할머니당 인근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워 개를 삶아 먹었다가 ‘동토(動土)’가 나서 무당을 불러 큰굿을 하고 할머니당에 가서 사죄한 후에야 회복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국립공원관리공단 건물과 구계등 모습.

구계등 방풍숲은 생태박물관의 모델

구계등 방풍숲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주거지와 농경지를 지켜주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마을 공동체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외지인의 발길을 불러들이는 관광자원과 교육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학술적 가치도 높다. 난대성 수종과 온대성 수종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구계등 방풍숲은 생태박물관이다.

196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된 에코뮤지엄(ecomuseum, 생태박물관)은 박물관의 기능을 건물 내에 한정하지 않는다. 생태박물관은 자연유산, 문화유산, 무형의 기억 모두를 대상으로 하며, 여기에 보존, 전시, 관람, 교육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한다.

생태박물관은 자연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포함한 지역 전체 혹은 마을 전체를 통째로 박물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와 함께 지역주민이 박물관 활동과 운영에 적극 참여하는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열린 박물관, 박물관 밖의 박물관을 추구한다.

구계등 방풍숲은 생태박물관으로의 접근을 매우 유효하게 한다. 생태박물관의 중심테마는 자연친화적인 환경에서 찾아지는데, 마을숲을 조성한 전통사회의 인식론은 이미 순환과 생명에 대한 생태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 이런 점에서 생태적이면서, 문화적인 요소까지 내재하고 있는 구계등 방풍숲은 또 다른 과학적, 철학적, 예술적 상상력과 창조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생태박물관으로서의 가능성을 오래 전부터 예비해두고 있었다.

자연친화적인 환경 외에도 생태박물관은 지금까지의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유물과 자료의 수집, 보존 및 전시라는 측면을 포함하면서 관람객과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문화재창조의 발원지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활용될 수 있는 자원은 민속문화이다.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제약을 극복하고 참여형 전시로 발전시켜 다양한 메시지를 현장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자원이 민속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시 마을숲에 내재되어 있다. 정도리의 가장 큰 행사인 당제가 거행되는 곳이 마을숲이었기 때문이다.

▲ 국립공원다도해해상관리사무소 직원의 숲 해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탐방객들.

마을과 숲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보존 대책 절실

생태박물관에서 관람객은 마을신앙과 풍수신앙을 체험하고 마을숲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기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의 삶을 현장에서 호흡할 수도 있다. 또한 마을주민들은 박물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관람객에게 자신들의 체험과 기억을 들려주는 도슨트로 활동할 수 있다.

이는 급속한 도시화와 공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붕괴되어 가는 농촌, 어촌, 산촌 마을의 주민들에게 소득증대를 비롯한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마을숲을 생태박물관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형태적·기능적인 원형 보전이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마을 내에 역사적·문화적 유적이나 유물에 대한 검토가 더해져야 할 것이다. 민속문화의 전승양상과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지도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한여름의 싱싱한 난대림의 향기에 취해 산책로를 천천히 걷다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산책로를 빠져나와 갯자갈과 숲이 만나는 해변길을 걷는 데 한 시간, 반대편 마을과 숲이 만나는 농로길을 걷는 데 또 한 시간. 세 시간의 정도리 마을숲 탐방길 내내 생태박물관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의 에코뮤지엄이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면, 우리 민족의 생태박물관은 적어도 수백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어쩌면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추구해온 우리 민족의 삶 자체가 오래된 생태박물관 아니었을까. /김경대 기자·정명철 전남대 문화재학 박사과정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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