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롭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풍수적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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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7.0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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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전남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사산숲과 월봉리 안영숲

인간에게 공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공간적 존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마도 공간을 떠나서는 아무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공간은 어떤 공간일까? 상하, 전후, 좌우 세 방향으로 퍼져 있는 그런 기하학적 공간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무언가로 가득 찬 문화적 공간임이 분명하다.

이번에 찾아간 전남 함평군 나산면 초포리 사산마을과 월봉리 안영마을의 마을숲을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마을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그 속에는 마을사람들의 육체적 삶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삶까지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게다가 두 마을에는 마을숲 조성의 배경이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덧붙여져 전한다.

이웃마을의 공격적인 형국에 대응하기 위해 취약한 지점에 마을숲을 조성한 것이다. 마을사람들의 복거(卜居)에 대한 믿음과 삶의 공간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 드문드문 그 흔적만 남아있는 사산마을 비보숲.

활 쏘는 형국을 완성해준 사산숲

공간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풍수를 들먹여야 할 것 같다. 풍수에서는 인간의 주거공간인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세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산세는 두 가지의 준거에 따라 해석된다. 하나는 지리적 연결망으로, 조산과 주산, 좌청룡과 우백호, 안산과 진산 등의 관계를 살펴 명당을 설정하고 해석하는 방식이다. 이를 풍수용어로 간룡법(看龍法)이라 한다.

간룡법은 산을 용으로 인식하고 용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지기의 흐름을 맥이라 하여 용맥의 흐름이 좋고 나쁨을 헤아리는 방식이다. 산맥의 으뜸이 되는 조산(祖山)으로부터 혈이 맺힌 곳까지 흐르는 땅의 기운과 함께 좌청룡, 우백호 등의 조화와 균형을 주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리적 형국이다. 땅의 형상에 따라 좋고 나쁨을 해석하는 시각이다. 이를 형국론(形局論)이라고 하는데, 땅의 모양이 길한 형국을 하고 있으면 발복이 된다고 믿을 뿐 아니라, 형국의 내용에 따라 발복의 내용이 결정된다고 여긴다. 간룡법이 거시적 맥락을 중요시한다면 형국론은 미시적 직관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사산마을은 뒷산의 양쪽 산자락이 뻗어내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마을숲은 마을 끝에서 시작하여 마을 입구까지 길게 이어져 있는데, 마치 산과 산을 연결한 듯한 모양새다. 지금은 원형의 숲이 거의 훼손되어 그 흔적만 드문드문 남아 있지만, 본래는 길이 400m, 폭 1.5m, 면적이 0.7ha에 이르는 규모였다고 한다.

또한 본래의 사산숲은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주요 수종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말에 벌목으로 없어졌다가, 후에 마을주민들이 왕버들, 산벚나무, 은행나무, 측백나무 등을 식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노거수는 10여 그루밖에 남아 있지 않고 최근에 식재한 어린 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사산숲은 무엇보다 형국론을 완성하기 위해 조성했다는 데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산(射山)은 ‘활을 쏘는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마을은 활 형국인데 활시위가 없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고 하여 마을숲을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당산제 전승이 끊겼지만, 예전에는 사산숲에 안당산과 바깥당산이 있어 해마다 제를 모시고 사산숲을 신성한 영역으로 보호했다고 한다.

▲ 기러기 목 부분에 조성한 안영숲. 맨 앞 느티나무는 무려 800년의 수령을 자랑한다.

기러기 형국을 완성해준 안영숲

사산마을에서 1km쯤 서쪽에 있는 안영마을은 5백여 년 전에 초계정씨들이 처음으로 들어와 부락을 형성하고 정착했다. ‘안영(雁影)’이라는 지명은 지형과 산세가 기러기 날아가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천주봉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이 서당봉에서 다시 우뚝 솟아 안영마을을 감싸고 있고, 월봉천은 마을 앞 쇄기뜰의 기름진 평야를 적시고 흐르다 고막천과 몸을 섞는다.

마을 동쪽 고갯길 정상부에 조성된 안영숲의 유래는 사산숲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필이면 사산마을 뒷산과 연결되어 조성된 사산숲이 마치 안영마을을 향해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 형국이었던 것이다. 기러기 형국인 안영마을을 향해 금방이라도 화살을 뱉어낼 것처럼 위협적인 사산마을의 형국을 막아 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화살 방향과 일치하는 기러기 목 부분에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식재하여 마을의 평안을 유지하고자 한 것이다.

실제로 마을 남쪽 입구에서 바라보면, 마을의 형국이 기러기가 길게 목을 늘어뜨리고 날아가는 듯한 모양새이고, 마을숲이 조성된 지점이 기러기 목 부분과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기러기가 고개를 늘어뜨리고 날아가는 듯한 형국의 안영마을 전경.

이렇게 조성된 안영숲은 천주봉에서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숲 속에 모정과 10여 기의 고인돌이 있어 여름철에는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을주민 정영규(65) 씨에 의하면, “매년 백중날에는 이곳에서 돼지도 잡아먹고 수박도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잔치를 벌여 마을주민들 간에 화합을 다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안영숲은 ‘당산’이라고 불리는데, 마을주민들은 이 숲에 ‘당산할머니’가 좌정해 있다고 믿고 있다. 당산할머니에게는 제삿밥을 올리지 않으나 정월 열나흗날 밤에 마을 앞에 있는 ‘당산할아버지’에게 제의를 올린 다음에 이곳에 와서 당산굿을 친다. 마을 앞 들판에 서 있는 당산할아버지의 신체는 수령이 500년 정도 된 느티나무이다.

▲ 안영마을 당산할아버지.

자생풍수, 고침과 치유의 지리학

사산숲과 안영숲은 풍수적인 형국보완을 위해 조성되었으며, 마을의 흥망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믿어져 오랜 동안 보호되어 왔다. 특히 안영마을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감나무당산을 일본인에게 팔았는데 그 후로 마을주민 3명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새롭게 신체로 정한 느티나무당산과 마을숲을 각별히 보호해왔다.

하지만 사산숲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심하게 훼손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동제의 전승이 끊긴 것도 숲의 훼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마을숲을 조성한 풍수적 배경은 주로 비보풍수에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풍수지리학자 최창조는 한국의 자생적 풍수사상의 원류인 도선풍수(道詵風水)에 대해 “고침의 지리학, 치유(治癒)의 지리학”이라고 하면서 “결함이 있는 땅에 대한 사랑”이 바로 비보풍수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어머니의 땅’이라는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어머니의 품안이라고 모두 명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어머니라 하더라도 피곤할 때도 있고 짜증이 날 때도 있다. 물론 병환이 드시는 경우도 있다. 그런 품 안은 고되고 무정하기 때문에 모양새가 어머니 품안처럼 생겼다 하더라도 명당이 되지는 않는다. 정신이 바르지 못한 어머니라면 그 품안에 살기가 들 수도 있다.” 그런 무정한 어머니를 달래거나 고쳐드리고 나서 그곳에 안기는 것이 자생풍수의 비보방법이라는 것이다.

▲ 안영숲과 모정.

사실 자연적인 지세는 조화롭게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느 한쪽이 허한 곳이 있는가 하면 어느 한쪽은 지기가 드센 곳이 있다. 허해서 부족해도 지기를 갈무리하기 어렵지만 지나치게 넘쳐도 생명의 조화를 깨뜨린다. 따라서 혈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약하고 허한 곳에는 산을 만들거나 숲을 조성하여 비보(裨補)로서 보완하고, 강하고 튀어나온 곳에는 절을 짓거나 입석이나 탑을 세워 압승(壓勝)으로 눌러야 한다.
 
이러한 비보의 원리는 용맥비보(龍脈裨補), 장풍비보(藏風裨補), 형국비보(形局裨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용맥비보는 명당을 이루는 용맥의 형세와 기운을 조정하여 적정 상태로 맞추는 것으로써, 그 기운이 약하거나 쇠해진 경우에는 소나무를 식목하여 생기를 북돋우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장풍비보는 명당을 중심으로 한 좌우의 지세가 마을을 감싸 안지 못하고 벌어졌거나 빠지는 형세일 경우 숲이나 조산을 조성하여 비보를 하는 방법이다.

형국비보는 지형의 형국에 부합하는 장치를 하는 것으로, 지형이 배형국이면 못을 파거나 돛대를 세우고, 봉황형국이면 오동나무나 대나무를 심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미망(迷妄)의 삶이지만 자신과 후손들이 살아갈 공간을 조화롭게 완성하려는 선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안영숲 그늘에 조심스럽게 자리를 틀고 앉아 사산숲을 내려다본다. 경망스럽기 그지없는 우리 사회는 무엇으로 비보해야 할까? /김경대 기자·정명철 전남대 문화재학 박사과정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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