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막기 위해 최치원이 조성한 인공숲
홍수 막기 위해 최치원이 조성한 인공숲
  • 시민의소리
  • 승인 2009.06.1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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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마을숲을 복원하자
⑥경남 함양군·읍 상림과 병곡면 도천마을 솔숲

지난 10일 경남 함양 상림숲을 찾아가는 길, 함양IC를 나서자 ‘한들’이라 불리는 널따란 들판 가득 화려한 꽃양귀비가 장관을 이뤘다. 국내 최대 규모의 양귀비축제라는 ‘플로리아 페스티벌’이 열리는 중이었다.

‘산삼의 고장’이라 알려진 심신산골 함양이 꽃축제를 비롯해 상림 주변을 관광단지로 조성하는 등 ‘웰빙 함양’이라는 도시이미지를 향해 밑돌을 놓는 작업으로 분주했다. 꽃양귀비의 화사한 자태를 뒤로 하고 ‘천년의 숲’ 상림(上林)에 접어들자 초록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함양상림은 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한국 인공림의 효시로 평가되고 있다. 이 숲은 함양읍 외곽인 대덕리와 운림리 두 마을에 걸쳐 있으며, 길이 1.6km, 폭 80~200m, 면적 20.6ha에 이르는 큰 숲으로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의 제방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 화사한 여름꽃과 시원하게 흐르는 계류 사이로 상림숲 산책로를 걷고 있는 관광객들.
함양은 백운산 계곡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들어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홍수가 자주 발생했는데, 함양상림은 홍수피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조성한 인공림으로 숲의 서쪽으로는 위천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전답과 구릉, 시가지가 연결된다.

수령이 100~500년 된 느티나무, 밤나무, 서어나무, 까치박달, 이팝나무, 말채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을 비롯한 참나무 류와 느릅나무, 회화나무, 물푸레나무, 다릅나무, 산벚나무, 단풍나무 등이 상층목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개암나무, 쪽동백, 국수나무, 자귀나무, 산초, 싸리류, 개옻나무, 병꽃나무, 작살나무, 찔레류, 청미래덩굴, 인동, 칡, 머루, 조릿대 등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되어 울창한 낙엽활엽수림을 형성하고 있다. 이 숲에 서식하는 식생은 모두 120여 종 2만여 그루에 달해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1100여년 된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숲

숲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1100여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887~897년) 때 함양태수로 부임한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조성한 것이라 전한다. 당시에는 백운산에서 발원한 위천이 함양읍 중심을 관통하여 흘렀는데, 해마다 장마철만 되면 홍수피해가 심해 위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고 제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길이가 5km에 이르렀으나 홍수로 인해 숲의 중간이 파괴되어 위쪽 상림과 아래쪽 하림으로 나뉘어 현재의 규모가 되었다고 한다. 이 숲에 있는 나무는 최치원이 합천의 가야산에서 옮겨온 것이라 하며, 뱀과 개구리가 살지 않는다는 전설이 함께 전하고 있다. 공원에서 만난 주민들은 “전설대로 상림 내에서 실제 뱀과 개구리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이 숲에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류가 많은데, 흉년에는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이 되기도 했다. 이 숲은 수해방지를 위한 호안림으로 조성된 이후, 그 기능이 확장되어 풍치림, 방풍림의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는 더욱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상림 입구에는 대형주차장을 만들어 방문객이 쉽게 찾아올 수 있게 해놓았고, 숲으로 둘러싸인 축구장만한 잔디밭이 숲 초입에 조성되어 있어 여가선용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약 7만㎡ 면적에 조성된 상림 연꽃단지는 350여종의 연꽃이 개화를 앞두고 관광객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 지난 4월 5일 식목일에는 공무원과 주민 3천여 명이 참여해 하림 공원에 나무를 심었다. ⓒ함양군청
주차장 앞쪽으로는 380억원을 들여 문화예술회관, 향토박물관, 종합사회복지관 등 문화기반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지역의 풍부한 인문자원이 상림공원과 조화를 이뤄 천년고을 함양의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게 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민선 3, 4기 재선군수인 천사령 군수의 강력한 의지가 크게 한몫했다. 천 군수는 상림이 가진 자연자원으로서의 가치와 미래성에 주목하고 그동안 방치돼 있던 상림 보존에 열을 올렸다. 우선 상림 그 자체는 산책과 휴식이 가능하도록 자연공원으로 정비하고 상림 외곽에 여가와 문화체험이 가능한 문화기반시설을 집적화했다.

군은 먼저 상림 내부에 어지러이 놓여있는 인공조형물을 밖으로 옮기는 작업부터 서둘렀다. 상림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함양을 빛낸 11인의 흉상’을 한데 모아 역사인물공원으로 꾸미고 각 사회단체에서 세운 조형물들도 설득작업을 거쳐 외곽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 상림 안에는 연리목이라 부르는 사랑나무가 두 그루나 있다.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만나 한 몸이 됐다.
또 상림공원과 인접해 농산물 직거래 장터와 같은 도농 박람회장과, 어린이 놀이공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어디까지나 상림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게 되며 사라지고 없는 하림까지를 복원해 ‘숲으로 먹고 산다’는 꿈을 현실화할 생각이다.    

이밖에 상림숲 잔디밭 끝에는 조선시대 함양읍성의 남문이었던 함화루(咸化樓)가 있고, 이곳에서 시작되는 숲 속 1.8km의 산책로를 따라가 상림 최북단인 물레방앗간에서 실개천을 건너 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 6ha에 이르는 연지(蓮池)를 따라 걸으면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숲 속으로 기다랗게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으며, 다람쥐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한 숲 속에는 고운 선생을 기리는 사운정(思雲亭)과 파평윤씨 종중에서 지은 화수정(花樹亭)이 있으며, 이은리 석불, 함양 척화비 등이 남아 있어 역사와 문화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120여 종류의 남부 온대 낙엽활엽수림이 잘 보존돼 있어 학술림으로서의 가치가 무척 높으며, 활용도가 높아 마을숲의 기능적 효용성을 탐구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숲은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하림 복원으로 다시 ‘천년의 꿈’ 품다

상림숲을 기반으로 한 함양군의 야심찬 도전은 2005년부터 구체화된 하림(下林) 복원 계획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기획의 제목이기도 한 ‘마을숲을 복원하자’는 염원을 현실화하고 있는 것.

함양군은 홍수와 6.25 전란 후 군부대 비행장이 들어오면서 크게 훼손된 하림을 올해 초 6만여 본의 활엽 묘목을 심어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함양읍 남쪽 107,000㎡, 상림 면적의 절반인 약 10ha에 걸쳐 조성된 하림은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상림과 함께 함양 숲의 새 역사로 남을 전망이다. 하림은 인공 숲 외에도 토속어류 생태관과 조각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서 생태 체험장으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군의 의지도 의지지만 하림을 복원하기까지는 지역민들의 든든한 후원이 큰 힘이 됐다. 일부 상가와 주택, 사유지를 수용·보상하는데도 큰 불협화음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군 산림자원과 한송현 담당은 “하림 복원 작업에 주민들이 보여준 열의와 지지는 대단했다”며 “올해 식목일에는 3천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해 나무를 심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나무시장에서 나무를 직접 구해와 자기 이름을 단 표찰을 붙이고 나무가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관리할 계획이다.

함양인들의 이러한 애틋한 숲사랑에 대해 박행달 함양신문 기자는 “상림은 고운 최치원 선생의 얼과 정신이 담긴 함양의 뇌”라고 표현하고 “하림복원은 함양의 선비정신, 문화정신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의 발로”라고 분석했다.

공원에서 만난 주민 김상기(65)씨는 “상림은 함양인에게 어릴 적 추억과 향수가 담긴 어머니 품속과 같은 곳”이라며 “숲을 다시 찾을 때마다 곳곳에서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들이 아련하다”고 회상했다.

인공숲인 상림은 웬만한 천연숲보다 더 천연스러운 모습으로 길손을 맞는다. 특히 바람에 날리는 가을 단풍의 정취는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천년의 숲을 다시 예비하는 함양인들의 지혜가 부럽기만 하다.

상림 대신해 그늘 드리워준 솔숲

▲ 천년의 고요를 머금은 도천마을 솔숲.
상림과 하림을 돌아 나와 병영면 쪽으로 다시 핸들을 꺾었다. 상림보다 위천 상류에 자리한 병영면 도천 마을은 진양 하씨 집성촌으로 마을 초입에 있는 솔숲은 문중림이다.

솔숲 한 가운데에는 위수 하재구가 지은 하한정이 있는데 여름에도 추울 정도로 시원하다고 해서 하한정(夏寒亭)이라 이름 붙여졌다. 약 1만여 제곱미터에 조성된 솔숲은 상림과 달리 온전히 소나무와 잡목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마을 경로당을 지키고 있던 하인수(84)옹의 회상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상림에서 장구치고 노래 부르며 많이 놀았제. 그러다가 상림이 문화재가 되고 난 뒤부터는 솔숲으로 몰려 들었어. 솥 걸어놓고 돼지 잡고 대단했어. 사람들이 어찌나 몰렸든지 풀이 다 말끔했어.”

마을 주민들은 솔숲이 언제 조성됐는지 모른다고 했다. 마을이 생길 때부터 있지 않았겠냐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솔숲에는 오직 정적만이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제 솔숲에 가질 않는다고 했다. “같이 가서 놀 사람이 있어야 가제”하고 푸념하는 한 노인의 말이 가슴을 때렸다. 솔숲으로 건너가는 길도 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끊겨 있었다. 하한정에 올라 한담을 나누던 어른들과 수통목에서 물장구치던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김경대 기자·정명철 전남대 문화재학 박사과정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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