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포럼은 여성서장으로서 예술의 혼을 경찰에 접목, 감성지수를 올려 소통과 화합을 통해 신바람 나는 직장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감동을 받는 경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임 감독을 초빙했다.
임 감독은 장성 출신으로 고향에 내려와서 지역민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성장과정을 거쳐 스스로를 반성하고 처절한 정도로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영화인으로서 70평생 살아온 얘기를 들려줬다. 일개 보조에서 세계적 감독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과 영화와 함께한 영화인으로서의 삶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갔다.
“고향을 팔아먹고 사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임 감독은 “잘 아시는 분의 며느리가 서장님이라는데 놀랐다”며 “제가 어떻게 영화에다 팔아먹었는지 얘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얘기를 시작했다.
“헐리우드 영화의 아류에 속하는 영화로 시작했지요. 미국 수준으로 영화를 찍고 싶었지만, 제작비가 100배 이상 차이가 나고 미국과 같은 수준의 연기자가 어디 있었나요. 최신 기계와 최신의 과학적인 기자재를 사용하는 미국 영화를 따라 잡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그들을 따라 잡을 방법을 생각했는데, 한국 사람이 아니면 따라잡을 수 없는 영화를 찍을 방법을 찾다가 일제 시대의 수모라든가 한국 사람의 삶, 문화적 개성들을 영화에 담는다면 미국영화와 구별이 되고 그런 것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를 대표하는 영화하면 <서편제>와 <태백산맥>을 꼽을 수 있는데, <장군의 아들>을 찍으면서 흥행에서 자유로워진 그가 당시의 군사정권이 반대할 <태백산맥>을 찍기 위해 기다리다가 흥행에 실패할 것이 뻔한 판소리 영화 <서편제>를 흥행과는 상관없이 자유스럽게 찍을 수 있었고 뜻하지 않게 자신의 대표작이 된 <서편제>의 제작 뒷얘기도 들려줬다.
덧붙여 자신이 장성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서편제>를 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사랑방에서 지인과 편안히 담소를 하듯 강연을 이끌어간 임 감독은 <서편제>의 탄생처럼 자유스러운 가운데 좋은 영화가 나왔듯이 경찰관들이 사회의 치안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면 <서편제>와 같은 ‘좋은 영화’처럼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종금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