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실천은 곧 생명을 살리는 운동”
“나눔의 실천은 곧 생명을 살리는 운동”
  • 정영대 기자
  • 승인 2009.05.01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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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양복사 주지 인성스님

2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入滅)에 드신지 2553년째 되는 날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오고 간적이 없고 항상 머물러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다(常住不滅) 했으니 숫자를 헤아린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세상만물이 부처님이요(處處佛像), 모든 일이 부처님을 위한 일(事事佛供)이라 했으니 사찰에 가서 부처님을 찾는 것도 일견 우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순군 능주면에 위치한 양복사를 찾은 것은 그곳 주지스님의 특별한 나눔 의식 때문이었다.

특히 작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나눔의 실천 행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 했다. 행복사 주지인 인성스님과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오전 사찰의 한 건물에서 이뤄졌다
.

▲ 인성스님(48)은1980년 가을 화순 운주사에서 출가했다. 참선수행을 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 후 운주사에서 20년 정진수행을 한 후 지금까지 양복사 주지로 활동하고 있다. 출가 당시 스승이었던 운주사 주지스님이 인성이라는 법명을 내렸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별 뜻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필생의 화두가 뭐냐고 물었다가 “도반끼리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는 타박만 당했다. 현재는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회의 이사와 화순 무료급식소 연꽃세상 대표를 맡고 있다.

-. 불법에 귀의하게 된 계기는?

불교와는 어려서부터 인연이 깊었다. 속가 아버님이 참선수행을 하시던 분이었다. 광주항쟁이 발생했던 1980년 가을에 출가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운주사에서 20년 수행하다 양복사로 옮겨와 벌써 10년째다.

-. 종교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종교가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해본다. 유일신 종교는 말 그대로 창조신을 믿는다. 유일신의 종교적 근본주의가 충돌하면서 전 세계가 전쟁과 갈등을 겪는 등 인류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반면 불교는 신을 부정한다. 절대자의 힘에 의한 창조, 운명을 좌우하는 절대적인 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세상살이는 내가 잘해야 한다. 내가 좋아야 네가 좋다. 불교는 상생의 종교다. 혼자서는 절대 잘될 수 없다. 모든 사물들은 연기(緣起)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하는 존재다. 모든 종교인들이 각자 좋은 옷을 입고 평화와 자비, 박애의 정신을 말하지만 얼마나 진실하게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

때론 종교가 이념보다 더 무섭다.

-.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라면.


“내 안을 먼저 돌아보고 성찰하라는 것이 부처님 오신 의미”

올해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하신지 2553년 되는 날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처님이 가신 날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오고 간 적이 없다. 죽고 사는 것은 육신이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는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도록 깨우침을 주신 것이다.

다른 종교는 자신의 밖에서 문제를 찾는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발생한다. 불교는 내 안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성찰한다. 부처님 오신 날은 남보다는 내안을 들여다보고 자신부터 성찰하라는 엄청난 뜻이 있다.

-.불교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불교는 각자가 내안에 잠재된 무한한 불성(佛性)을 깨닫고 각자가 부처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식 인사는 ‘성불 하십시오’다. 불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종교다.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불교는 중도(中道)를 표방한다. 중도는 세상의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다. 중도에 입각해 깨우치는 것이 올바른 깨달음이다.

불교는 울타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너와 나, 시시비비, 이것과 저것 사이의 울타리를 없애자는 것이 기본 교리이자 사상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시비가 생긴다. 너와 나를 구분하면 울타리가 생겨난다. 남북문제, 정치적 붕당, 종교간 다툼, 빈부 격차 등 울타리가 많은 시대다. 이런 혼탁한 시대일수록 부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불교를 생명과 나눔의 종교라고 하는데.

불교의 중심사상은 자비(慈悲)다. 그래서 불자가 지켜야 할 첫 번째 계율이 불살생(不殺生)이다. 불교에서는 너와 내가 따로 없고 모두가 평등하다. 일체중생은 모두가 견성(見性)의 존재다. 때문에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정신이 생명사상이다.

불교가 환경운동에 열심히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다른 생명도 인간을 소중히 여긴다. 다른 생명체를 파괴하는 순간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인과의 악순환에 휘말리게 된다. 불교의 두 번째 계율은 나눔이다. 훔치지 말고 베풀라는 말이다. 나눔의 실천은 곧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다. 생명과 나눔에서 자비의 정신이 나온다.

-. 탐진치(貪嗔痴)의 삼독(三毒)은 어디에서 연유하나?

“인간이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것은 착각에서 비롯된 일”


인간이 욕심내고(貪), 화내고(嗔), 어리석은 것(痴)은 모두가 무명(無明)에서 비롯된다. 무명은 곧 착각이다. 세상을 보는 안목과 지혜가 없으면 착각을 하게 된다. 착각 때문에 욕심이 생기고 세상이 내 욕심대로 안 되다 보니 화를 내게 된다. 화를 내면 사리판단이 무뎌져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탐진치가 원환구조를 이루며 악순환을 계속하는 형국이 지속된다.

-. 선(禪) 수행과 실천 행 중 무엇이 강조돼야 하나.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출가하면 기본 4년 동안은 불교경전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 후 10년 동안 산사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향한 끊임없는 정진의 과정이 뒤따른다. 그런 뒤에야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분야에서 수행정진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어떤 스님들은 현생에서 깨달음을 포기하고 다양한 사회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수행하지 않고서는 실천적 힘이 생기지 않는다.

-. 불교에서 지금, 여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

지금 이 순간이 모여 내 역사가 된다. 불교는 현세를 중요시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곧 현세를 위한 실천덕목이 돼야 한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세상을 바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 지금 화순읍에서 무료급식과 독거노인에게 반찬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처음에 스님 몇 분이 모여 지역에 의미 있고 좋은 일을 하자고 고민했다. 시골은 대부분 노령인구가 주요 구성원이다. 특히 독거노인 가구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무료급식은 올해로 5년째인데 매일 130여명의 노인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이와 별도로 진행하는 독거노인 가정에 대한 반찬제공은 2년이 조금 넘었다. 최근 밥솥이 좋아져 밥하기는 편해졌지만 노인들이 반찬을 마련하는 것은 여간 쉽지가 않다. 몇 집 시범삼아 시작한 사업이 지금은 150가구를 넘어섰다. 매주 금요일마다 4찬씩 제공하는데 수요가 계속 늘고 있어 감당하기 힘들다.

-. 비용과 인력이 만만찮을 텐데 어떻게 충당하나.

무료급식의 경우 자원봉사자 5~6명이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비용은 화순군에서 급식비의 일부를 지원해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반찬제공은 자원봉사자와 후원금으로만 충당하고 있다.

불자들이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배달이 가장 큰 문제다. 화순군 7개 시군을 4개 팀이 돌고 있는데 차량운전자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군에 차량운전자 지원을 요청했는데 전례가 없어 지원을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자원봉사자가 차량배달을 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나 답답한 마음뿐이다.

-. 지역사회에서 종교간 화해를 위한 활동이 있나.

종교간 대화와 울타리 허물기를 위해 성당과 매년 체육대회를 개최했는데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가톨릭과는 어느 정도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개신교와는 거리 좁히기가 아직 요원하다. 

-. 불교계 내의 여성차별은 많이 시정됐나.

지금은 비구와 비구니 스님이 법회를 주최한다. 과거에는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에 남성이 우월하게 활동한 것이 사실이다. 그 같은 관습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비구와 비구니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한 것이 마치 차별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는 평등의 종교다. 부처님 앞에서 차별은 있을 수 없다.

-. 말법세대(末法世代)라고들 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말법세대였다. 말법세대는 인간의 마음이 진리에서 멀어지는 시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불살생과 생명 나눔, 바른 행실과 바른 말, 취하지 않는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재가자와 일반인들이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 만들고 싶다. 영남지역에는 재가자들이 수행하는 공간이 많다. 재가자 선방을 열어 참선이 뭔지, 수행이 뭔지를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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