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땅 설움 감싸는 무료 진료소
“병원 못가는 것이 제일 서러웠는데, 여기와 신세 많이 집니다.”
수완지구에서 건설 노동자로 일하는 재중동포 리만혁(가명)씨. 여느 사람들처럼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연변에서 아내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중국에 남은 가족들과 재회할 날만을 꼽으며 지금껏 특유의 근면·성실로 공사장을 누벼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머리가 깨질듯 아팠다. 하지만 의료보험도 없고, 한 푼이 아쉬운 타향살이 신세라 병원은 언감생심.
밀려드는 고통을 힘든 노동으로 누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즈음 고향에 있는 사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료로 진료해주는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이사장 이철우, 이하 건강센터)가 있다는 것이었다.
장인의 병이 걱정인 사위는 미리 건강센터에 전화를 걸어 상세한 위치까지 파악해 불러줬다. 빛이었을까. 아니 그때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겹겹이 포개진 고통은 벌써 인내의 한도를 훌쩍 넘어선 상태였다.
이번이 세 번째 치료라는 리씨는 “많이 좋아졌다”는 말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점심을 먹고 멀리 남구 소태동에서 이곳까지 한달음에 왔다는 그의 아내도 현재 건강센터에서 치과치료를 받고 있다며 웃었다.
광산구 우산동에 위치한 건강센터. 매주 일요일 오후 2~6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국땅에서 아프고, 지친 몸을 추스르는 곳이다. 아울러 100여명의 의사·한의사·약사·간호사 등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돌아가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루 네 시간 남짓 짧은 시간임에도 광주·전남·북 각지에서 평균 50여명이 찾을 정도로 북적인다.
2005년 6월 기독병원 선교회, 건강한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광주전남지부 등 뜻있는 단체들이 십시일반으로 광산구 월곡동 산정공원 근처에 외국인 무료진료소를 열었다. 하남·평동·소촌 산단 등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며 건강센터는 출발했다.
이후 2007년 7월 현재 위치로 장소를 옮겼고, 광주전남가정의학과의사회·광주시한의사회·하남성심병원간호사회·지역약사모임 등이 봉사에 참여하면서 지금의 규모를 갖추게 됐다.
각 단체와 개인들의 재정·의료기기·약품 후원도 큰 힘이었지만, 통역·행정을 통해 원활한 의료서비스를 도와온 자원봉사자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이 귀중한 자산이 됐다.
100제곱미터 남짓 건강센터에는 의학과, 한의학과, 치과로 구분된 진료실이 갖춰져 있다. 또 처방전에 따라 바로 조제할 수 있게 약이 비치돼 있어, 진료를 받은 노동자들은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간다. 제한된 시간 건강센터를 방문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더욱이 대기실 한쪽 벽면에 가지런한 1500여명의 진료기록은 건강센터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진료·병력 관리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강을 살피겠다는 의지가 묻어 나온다.
박신기 원장(광주시한의사회)은 “힘들고 무리한 노동에 따른 근골격계 질환, 음식차이에서 오는 위장장애 환자들이 많다”며 “고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쉼 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곤 쉬라는 말밖에 없다”고 안타깝게 말했다.
후배 한의사들이 뜻있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며 건강센터 진료에 참가하게 됐다는 박원장은 “봉사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이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봉사는 나 자신의 행복 찾는 일”
여건상 건강센터에서는 불가능한 혈액·X-ray·심전도·내시경 검사 및 안과·산부인과 치료는 인근 하남성심병원, 이용빈가정의학과 등에서 받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더 다양한 치료분야로 확대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이긴 하지만 건강센터는 많은 단체와 기관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으며 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보다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현재도 분주히 노력하고 있다.
여자 친구와 함께 데이트 겸 중국어를 통역하기 위해 온 제약회사원 김성근(28·남)씨, 과거 베트남 의료봉사 경험을 되살려 행정에 참여하고 있는 은행원 한민주(24·여)씨도 맡은 바 일을 충실히 이행하며 매끄러운 의료서비스를 보조하고 있었다.
독립된 각 분야에서의 노력이 합쳐져 인도주의라는 대의를 실현하는 ‘분업적 공동체’가 건강센터를 이루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적당한 표현일까.
각 파트별로 스케줄을 짠 결과가 모여 구체적 봉사활동이 이뤄지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에겐 빈틈없는 호흡으로 드러나는 것은 비단 5년의 건강센터 역사가 가져다준 산물만은 아니어 보였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봉사가 어우러져 빚어진 결과물로 보였다.
한국 산업의 필요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 우리나라에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다. 우리나라 산업은 상대적으로 값싼 노동력이, 외국인 노동자들은 일자리와 자국보다 높은 임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국인 대부분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우리의 빈자리를 채우며 묵묵히 일하는 이들에게 한국인들의 시선은 그간 싸늘했던 것이 사실.
우리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하는 마당에, 우리사회의 틈을 채우며 고생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고사하고 편협한 시선과 부당한 대우만이 가득한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니었던가.
돌봐주는 이 없는 빈방에서 끙끙 앓아본 설움과 절망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주 노동자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부터 먼저 시작한 건강센터 자원봉사자들은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소중히 간직해야 할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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