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선만 달리다 ‘90일 평화’ 깨지나
평행선만 달리다 ‘90일 평화’ 깨지나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8.12.1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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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원직복직”…사측 “취업알선” 대립만

이번 호부터 4회에 걸쳐 지역사회 장기 미해결 과제를 돌아보고 해결책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주>

1년이 넘도록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지역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 문제는 좀처럼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해고 노동자들의 원직복직 투쟁이 기어이 400일을 넘어섰다. 목숨을 내 건 ‘철탑 고공 농성’은 사측을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해고 노동자 이주석(39)씨는 “솔직한 심정으로 언제 내려올지 몰랐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심정으로 목숨 걸고 고공시위에 들어갔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지난 9월 9일, 광주지방노동청 중재로 3개월의 평화기간 동안 주기적인 면담을 약속했다. 18일 8차 면담을 마지막으로 오는 28일 평화기간이 만료된다.

   
▲ 사측과 해고노동자 양측은 ‘취업알선’과 ‘원직복직’을 주장하며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어렵사리 마련된 3개월의 평화기간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나가고 있다.

▲ 3개월 평화기간 성과는?

  
지난 3개월간 해고 노동자들과 사측은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을까.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3개월을 “해고자 복직을 위한 교섭임에도 불구 기본 취지가 무색할 만큼 진전된 이야기가 없다”며 “고공농성으로 인한 지역여론을 의식한 사측의 기만적 태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평했다.
  
유제휘(38)씨는 “사측은 우리를 협상대표로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며 “해고자 복직은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불성실한 교섭태도를 지적했다.
  
사측은 회사의 어려운 사정을 호소하며 하청·협력업체 알선을 주선했다. 강현성 로케트전기 생산관리부 차장은 “3개월간 평화기간은 대화의 장이지 ‘교섭’이 아니다”며 “회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최선책을 찾기 위해 유관업체로 알선을 추진해 한군데서 확답을 받았지만 해고자들이 이조차도 거부한 상태다”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7명 전원 원직복직’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서 취업알선은 해결점이 될 수 없다는 입장. 1년여 동안 힘겨운 상황 속에서 싸울 수 있던 한 가닥 희망은 오직 원직복직뿐이라는 것.
  
곽문섭 로케트전기 생산지원팀장은 “회사도 상황이 좋다면 원직복직을 추진하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며 “원직복직만 고집하는 상태인데 이야기가 무슨 진전이 있겠냐”고 말했다.
  
결국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만 내세운 양측은 협의점을 찾지 못했다.

조고익 광주지방노동청 노사지원과장은 “진정성을 가지고 상대방들이 고민할 수 있는 현실적인 안을 가지고 와야 논의가 될 텐데 자기주장만 내세우다 보니 진지한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며 “결국 올해 안에 마무리되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것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곪을 대로 곪은 감정의 대립이 3개월간 이들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 로케트전기 해고노동자들의 삭발시위 모습. <시민의소리>자료사진.
▲ 해고노동자 ‘표적해고’ 소송 패소
  
지난달 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김인욱)는 해고 노동자 7명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망간전지에 대한 대내외적 수요 감소와 원자재 폭등으로 적자 상태가 지속된 점으로 미뤄 사측이 정리해고 사유로 내세운 망간전지 생산라인 축소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된다”며 “사측의 정리해고 대상자 선정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통념상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해 해고 노동자 오미령(38)씨는 “법의 잣대가 정의와 약자 편이 아닌 권력과 부의 편에 서서 해고자를 두 번 죽이는 심판을 내렸다”며 “부당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 한번 공정한 판정을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패소 판결 이후 지난 3일 해고무효소송을 행정법원에 접수한 상태다.

▲로케트전기, 얼마나 어렵나
  
‘표적해고’ 논란에 이어 해고노동자들이 문제제기하고 있는 점은 사측의 재정 상황이 호전됐음에도 불구 ‘괘씸죄’를 적용, 원직복직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것.
  
사측은 지난 1년여 동안 ‘회사의 재정악화’를 이유로 원직복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 12일 로케트전기를 방문해 회사 상황을 살펴봤다.
  
로케트전기의 지난 3분기(1~9월) 누적 이자비용은 -0.19(영업이익 -5억 6800억, 이자비용 29억 3500만원)로 누적적자를 기록했다. 이자보상배율 수치가 1 미만인 경우, 회사의 수익이 이자초자 지불하기 힘든 것을 의미한다. 
  

▲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들은 목숨을 내건 ‘철탑고공 농성’을 했다. <시민의소리> 자료사진.
강현성 차장은 “회사 재정이 악화되고 있는데다 경제 불황까지 겹쳐 사정이 좋지 못하다”며 “더욱이 해고 노동자들이 근무했던 ‘망간전지’ 라인은 주문량이 적어 1개 라인도 채 돌리지 못할 때가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달의 반가량은 기계가 멈춰있다는 것.

공장을 둘러본 결과, 29명이 한 라인으로 근무하는 ‘망간’라인은 총 4개로 태국으로 이전한 라인을 제외한 나머지 3라인은 기계가 멈춰있는 상태였다. 해당 라인 노동자들은 ‘알카라인’의 포장 작업과 외주업체의 포장 일을 하고 있었다. 갈수록 ‘망간전지’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생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듯 했다.
  
그러나 로케트전기는 전기적 반발력을 이용해 이온성 약물이 피부 침투 촉진하는 방법인 ‘이온토포레시스’ 특허를 취득 경쟁력을 확보한 상태.
  
문태호 공장운영팀 과장은 “이스라엘과 우리 두 군데서만 특허를 취득해 시장 개척에 뛰어들고 있지만 현재까진 그로 인해 파생되는 성과는 없는 실정”이라며 “기업들이 다 죽겠다는 판에 우리라고 다를 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로케트전기 대안은 없나.
  
해고 노동자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한다. 평화기간 이후 강도 높은 2차 투쟁을 예고하고 나선 것. 오미령씨는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이라며 “집에 덕지덕지 붙은 노란딱지가 언제 빨간 딱지로 바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임신 7개월차에 접어든 편혜경(36)씨는 “회사에 찍혀 도려내듯 쫓겨난 그 순간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며 “옆에 동지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도 몸이 무거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평화기간이 만료되면 양측의 대화 창구는 또 다시 닫히게 된다. 대안은 없는 걸까.

명등룡 광주비정규직센터 소장은 “회사가 어렵다곤 하지만 구조조정 없이 모두가 상생하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며 “일단 해고자들을 복직시킨 후 순환근무를 시키거나 임금을 동결하는 방법을 통해 일자리를 잃지 않고 같이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즉, 회사의 재정악화에 따른 희생을 노동자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
  
지금처럼 경제 불황이 지속된다면 언제든, 누구라도 제2의 로케트전기 해고 노동자가 될 수 있다. ‘동정론’에 편승해 외면했던 지역사회의 적극적 관심과 중재안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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