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로 통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노가다’로 통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8.12.09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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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우리지역 비정규직 실태점검(건설)
한국 불법 다단계 하도급 온상

제도 바꿨어도 불법 관행 여전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인 J씨(41)는 속칭 ‘노가다’다. 광주시내 한 아파트 현장에서 아침 7시 일을 시작하는 그의 일당은 하루 10만원. 전문업체에 소속돼 직영형태로 일하기에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하며 일당 7만원을 받는 단순 일용직 보다는 대우가 나은 편이다. 
  
많이 일하면 한 달에 25일, 1년 평균 8개월 일해 4인 가족을 힘겹게 부양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상의 수당·퇴직금은 없다. 현장에서 일만 열심히 하는 그에게도 지난 10년간 그대로인 일당은 불만이다. 보통 5~6단계를 거치며 수수료를 떼는 하도급 관행이 그 원인이라는 것도 안다.
  
심지어 몇 단계를 거쳐 최초 단가 40%로 공사를 맡는 업체를 보면 ‘저 돈으로 어떻게 공사가 가능하지’란 생각에 걱정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그간 지속돼왔던 관행이 쉬 바뀔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 우리사회 불법 다단계의 온상이었던 건설업. 최근 제도적 근거가 마련되며 이를 근절할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지만 현장에선 불법 관행이 여전하다. 여기에 세계경제위기 한파까지 겹쳐 제도가 현장에 뿌리내릴 지도 미지수다. 사진은 서구 치평동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토목·건축 일용직 노동자.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 광주전남건설지부(이하 광주전남건설지부)는 전국의 건설노동자를 약 2백만명~2백3십만명으로 추산한다. 그중 토목·건축 일용직 노동자들은 약 1백2십만명이고, 광주지역에선 그 숫자가 대략 2만5천명. 광주고용지원센터에 고용보험 피보험자로 등재된 노동자들이 약 2만3천명이고, 여기에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숫자를 감안한 수치다. 이중 약 9백명이 광주전남건설지부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다.
  
건설업 특성상 토목·건축 노동자들은 전부 비정규직이라 봐도 틀리지 않다. 수주를 받아 작업을 시작하는 건설회사 입장에서는 최소 상시 인력만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필요시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이 비용최소화를 위해 바람직하기 때문. 그래서 실제 시공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해왔다.    
  
건설현장은 지난 수십 년간 발주처(원청)-시공사(일반건설면허)-전문업체(전문공사면허)-시공참여자(속칭 ‘오야지’)의 하도급 구조로 운영돼왔다. 시공참여자 밑에 다른 시공참여자가 계속 붙어 5~6단계까지 하도급이 늘어지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경쟁을 통해 단가를 떨어뜨리려는 건설업체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하지만 도급의 단계가 늘수록 공사단가는 떨어져 부실공사의 위험성은 늘어났다. 낮은 공사비로 시공을 해야 하는 시공참여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중노동을 강요했다. 산업재해는 빈발했고, 임금체불은 다반사였고, 여차하면 시공참여자는 잠적했다.
  
뿌리 깊은 불법하도급 관행으로 우리사회가 치른 대가는 혹독했다. 성수대교 붕괴 등 부실공사에 따른 대형 사고가 이어졌다. 문제는 사고가 발생해 책임소재를 물으려 해도 꼬리를 무는 하도급 관행으로 그 공사를 실제 누가 담당했는지 파악할 수조차 없다는 것. 오히려 정부에서 불법 하도급을 없애야 한다는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노동자들은 노동법상 사용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껏 일했다. 그러다보니 노동조건 개선 등 권리는 찾을 길도 없었다. 문제의 원인을 불법다단계 하도급으로 규정한 노동자들은 민노당과 함께 지난 3~4년간 노력해 건설산업 기본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 개선을 일궈냈다.

올해부터는 시공참여자 제도가 폐지돼 노동자들도 형식적이나마 전문업체에 직접 고용되는 형태를 띠게 됐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의 길이 열렸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월 20일 이상 일하면 의무적으로 가입된다.
  
광주전남건설지부 김범종 지부장은 이를 “불법 다단계를 근절시키고, 노동자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하며 “올 광주 4곳의 사업장에서 단체교섭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도 거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지부장은 나머지 대부분의 사업장은 아직도 과거의 관행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암암리에 벌어지는 불법 하도급은 여전하고, 실제 서류상의 요건만 갖춰놓고 쉬쉬하는 현장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건설현장은 현재 개선된 제도와 뿌리 깊은 관행이 충돌하고 있는 중이다.
  
세계경기의 여파는 건설업을 비껴가지 않았다. 건축물 인허가 선행지표를 통해 드러난 내년 광주의 공동주택(아파트 등) 건설현장은 5~6곳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 지어야 할 건축물량이 벌써부터 눈에 띠게 줄어들고 있다.

계획·인허가·입찰·수주·시공의 단계를 거치는 건설업 특성상 현재의 어려움이 향후 2~3년 후에 나타난다는 것은 업계의 상식. 지금도 꽁꽁 얼어붙어 있는 건설시장의 전망은 한층 더 어둡다. 
  
조금이나마 개선된 제도로 권리를 찾는 것도 잠시, IMF 한파로 전국 60만의 동료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과거를 떠올리며 토목·건축 일용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불안한 내일을 애써 외면하며 일터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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