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으로 불리는 노동자들
사장님으로 불리는 노동자들
  • 노해경 기자
  • 승인 2008.12.01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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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수록 빚만 느는 암울한 현실
노동조합만이 유일하게 목소리 내

▲ 겉으론 사장님으로 불리지만 속내는 노동자인 화물·건설기계노동자들은 일을 할수록 빚만 늘어가는 현실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지난여름 같은 시기에 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를 알린 노동자들. ⓒ시민의 소리 자료사진.

정부는 사장님으로 부르지만, 현실은 노동자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트레일러·탱크로리 등 각종 운송매체를 통해서 물류를 운반하는 사람들과, 굴삭기·덤프 등 건설현장에서 사용되는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정부가 그들을 자영업자라 부르는 반면, 그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 말한다. 차량·기계 등을 명목상 소유하고 있기에 자영업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자신들을 노동자로 부르는 이유는 뭘까.
  
대부분 운송회사·건설회사에 소속돼 임금을 받는 노동자 신분이었던 그들. IMF 사태로 불거진 구조조정은 그들을 회사 밖 자영업자로 만들었다. 회사는 직영차량·기계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불하하며, 해고를 정당화했다.

그간 운송차량·건설기계 등을 소유하는데 허가제를 고집하던 정부도 신고제로 정책을 바꾸며 노동자들의 자영업자화를 부추겼다. 여기에 다른 업종에서 내몰린 사람들까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가세했다.  
  
말이 자영업자지 첫 출발이 노동자였고, 일하는 회사에 사실상 종속돼있는 그들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노동자성을 부인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부당함을 강요하는 것이다.

‘계약자유의 원칙’은 당사자 간 평등을 전제로 했을 때 의미가 있는 것. 변변하게 하소연 할 곳 없던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것은 자신들이 노동자의 처지임을 인식한 결과다. 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부당함에 대한 유일한 길이다. 아니면 어떠한 부당함도 감내하던가.
  
하지만 아직도 정부의 입장은 확고부동. 각종 노동관계법은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신분이면서,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우리지역 화물·건설기계노동자들을 만났다.   

먼저 화물 노동자. 전국운수산업노조 화물연대 광주지부에 따르면 광주·서남권에 6천~7천대의 운송차량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지부 산하 5개 지회에 소속된 조합원이 약 1,500명이다. 전국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광주·전남의 건설기계 장비는 약 6만대. 26개로 나뉜 지역본부 산하 지회에는 마찬가지로 약 1,500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다.
  
화물노동자들에게 운송을 맡기기 전 단계는 화주→주선사→운송사→알선사다. 이런 도급 구조에서 알선사로부터 일을 받아 물류를 옮기는 노동자들에게 적정한 노동의 대가가 돌아갈 리는 만무하다. 각 단계의 회사들은 운송료의 일부분을 회사의 이익으로 떼기 때문이다.

최초 화주에서 나온 운송비의 40~50%가 중간단계에서 빠져 나간다. 고속도로에서 하루 온종일을 보내며 손에 쥐는 월 300~450만 원도 차량할부 150~280만 원을 갚고 나면 살림하기도 버겁다. 이마저도 정상적인 경우고,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경우는 비참한 실정이다. 하역시간까지 정해주는 회사에 대해 배차에서 누락될까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심지어 물류를 싣고, 내리는 것까지 화물노동자에게 요구하는 업체가 대부분이어서 힘겹다. 힘든 상·하역을 마치고 고속도로로 나가야 하는 노동자에게 졸음운전을 예방하자는 캠페인은 야속하다. 더구나 상·하역 시 재해를 당하기라도 하면 고스란히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화물연대 전 지부장이었던 김성호씨는 최근 법원에 파산신고를 했다. “오랜 세월 운전을 해왔지만 결국 남는 것은 빚뿐이다”는 그의 말은 모든 화물노동자들의 미래였다.
  
다음은 건설기계노동자. 건설현장에 투입돼 일당 혹은 월급제로 일하는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사정도 낫지는 않다. 발주처→원도급→전문업체로 나눠진 구조에서 제대로 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하긴 마찬가지. 레미콘 직종 하나만 산재에 가입돼있고, 기계 가동 중 함께 일하던 주변 사람이 다쳐도 건설기계노동자가 전부 책임져야 한다.

건설현장의 사고는 대부분 중대재해에 속하기에 항상 불안감에 떨며 작업한다. 이런 사태를 “독박쓴다”는 표현으로 대신하는 노동자들. 여기에 건설현장의 악습인 어음이 가세한다. 대부분의 도급업체가 어음을 발행하는데 기본이 세 달 만기고, 할인이라도 할라치면 22%를 공제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어음의 지급 만기일을 기다릴 수 없는 처지고, 어음을 남발하는 회사일수록 부도의 가능성이 높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 심지어 어음을 발행하고, 바로 옆에서 할인해주는 회사까지 있는 현실 앞에 노동자들은 망연자실.

업주와 노동자 간 작성하는 임대차계약서도 드물고, 있다고 하더라도 ‘을(건설기계노동자)’의 의무만 가득한 노예계약서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일거리를 떼일까봐 부당함은 말도 못 꺼낸다. 
  
건설기계지부 굴삭기지회 김인수 지회장은 최근 생활전선에 뛰어든 아내로부터 볼멘소리를 듣고 있다. “건설기계노동자들은 보통 4~5천만 원 빚을 지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 갚을 길 없이 빚만 늘어가니 아내가 싫은 소리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비수기를 제외하고 성수기 때 150~200만원을 손에 쥔다는 건설기계노동자들도 불황의 여파 속에서 희망을 잃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화물·건설기계노동자들에겐 일정기간이나마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최소한 해고되기 전까지는 월급은 받을 것 아니냐는 말이다. 요즘 부쩍 노조에 대한 문의가 많고, 가입자도 늘어나는 이유는 더 각박해진 현실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겉으론 사장님으로 불리지만 일을 할수록 빈곤으로 내몰리는 화물·건설기계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갈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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