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무엇을 챙겨갔을까?
부시는 무엇을 챙겨갔을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8.08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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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지난 1979년 6월 지미 카터 미국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인권을 유달리 강조했던 카터 대통령인지라 박정희 정권의 인권탄압에 대해 어떤 식의 압력이 가해질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당시 모 언론사의 기자였던 나는 카터 대통령의 부인과 딸의 동정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고 신라호텔을 들락거리며 시시콜콜한 가십거리를 찾아다녔지만 별무성과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외신기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카터의 방문 목적 가운데 하나가 미국의 전화교환기 시스템을 한국에 팔아먹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당시 체신부는 전화 교환기 시스템 교체를 위해 국제입찰을 했는데, 독일의 지멘스와 일본의 후지쓰, 미국의 ATT 등이 3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박정희 정부는 가장 유력한 후보 기종이었던 지멘스 대신 성능도 떨어지고 값도 비싼 ATT 교환기를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유신치하의 한국의 인권상황에 관해 정상회담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 최근에 나온 어떤 자료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비서에게 ‘인권 좋아하시네’를 영어로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 나는 지금도 카터의 방한 목적이 인권보다는 장사였다고 믿는다.

그리고 대체로 한미정상회담은 무언가 뒷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마지막 담판이라는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가령 1966년 10월에 있었던 린든 존슨 미국대통령의 방한도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요청을 마무리 짓기 위한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당시 언론들도 ‘한미동맹 강화’, ‘안보공약 재확인’ 등을 대서특필하고, 수행원들의 동정 등 시시콜콜한 가십기사만을 보도했을 뿐, 정작 중요한 뒷거래 내용은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요한 국내 정보는 시차를 두고 외신을 통해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존슨 대통령의 방한에 관련된 중요한 뉴스를 20년 후 독일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마그누스 엔쩬스베르거의 책에서 뒤늦게 발견하였다. 당시 존슨 대통령은 동두천의 미군부대 장병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이걸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 2억입니다. 거의 30억이 우리와 맞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한테서 그것을 결코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뉴욕 리뷰 67년 2월 23일자 보도에서 인용)
   
한국정부와 한국의 언론은 존슨 대통령이 말한 2억의 ‘우리’ 속에 (당시의 인구통계로) 대한민국의 3천만 국민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엔쩬스베르거를 비롯한 외국인들과 외신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존슨 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한국 국민들 앞에서가 아니라 미군 앞에서 연설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누구를 가리키겠는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하루 동안의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이번엔 무엇을 챙겨갔는지 궁금하다. 물론 존슨과 카터의 방한은 이미 3, 40년 전의 옛날 일이다. 그 사이에 세계의 인구는 배로 늘었고 한국의 상황도 많이 변했다.

그러나 변치 않은 것도 있다. 미국은 언제나 값싸고 맛좋은 쇠고기를 포함하여 푸짐한 선물을 안겨주는 산타클로스라고 믿는 한국 관료들과 친미 언론들은 미국 대통령이 무엇을 팔아먹고 한국 정부가 무엇을 퍼주었다는 식의 표현을 당연히 반미와 반자본주의로 판단하여 금서목록을 작성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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