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내음 나는 ‘아라리’로 돌아가다
꽃내음 나는 ‘아라리’로 돌아가다
  • 오윤미 기자
  • 승인 2008.07.19 0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폐교활용기획 ③]

그리운 학창시절과의 재회, 추억의 박물관
지역 구심점 역할 톡톡, 정선아리랑 학교

▲ 추억의 박물관 전경.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 집에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때로는 구슬프게, 때로는 흥겹게 불리는 아리랑의 1번지, 정선을 찾았다.

사연 없는 곳이 어디 있겠냐만서도 아리랑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된 삶을 흥겨운 가락에 맡겨둔 채 노래로 승화시킨 선조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덩실덩실 어깨춤은 아리랑의 보너스.

체계적인 전승과 보전으로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불리는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이다.

일찌감치 정선아리랑에 매료된 한 청년이 있었다. 귓가에 맴돌던 흥겨운 아리랑 가락이 좋았던 진용선씨는 “이렇게 좋은 걸 혼자만 알기엔 아깝다”는 생각에 타지 생활을 접고 정선으로 돌아와 전승, 보존을 위한 학술연구를 위해 1991년 ‘정선아리랑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가 자리를 잡아가자 “교육과 계승을 위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리랑을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바람으로 1993년 아리랑학교 여름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변변한 장소가 없어 청소년 수련원이나 학교를 찾아가 아리랑 교육을 해오던 그는 기대 이상의 호응에 힘입어 아리랑학교 상설 운용을 위한 터를 찾기 시작했다.

▲ 진용선 정선아리랑학교 대표
정선군 신동읍 소재 매화분교가 매년 5만여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탈바꿈한 건 1997년도.

“하다못해 학교 나무까지 죄다 뽑아간 상태였다” 진용선씨는 그때를 생각하며 혀를 내둘렀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폐교는 무성하게 자란 풀들과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운동장이 진흙성분이라 신발이 다 벗겨지는 건 예사고 산골오지인지라 뱀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 ‘맨 땅에 헤딩’하듯 그는 하나에서 열까지 손수 바꿔나갔다.

타지에서 벌어온 돈을 밑천삼아 폐교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꿈꿨다면 고향으로 돌아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그.

공사가 시작되자 주민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다녀갔다. 처음에는 왜 그러나 싶어 어리둥절해했다. “외지에서 온 젊은 사람이 공동 공간인 폐교를 맘대로 바꾸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예요” 고향에 돌아왔지만 지역민들은 그를 ‘이방인’으로 생각했다.

“한 번은 호미를 20개를 사놨는데 쓰려고 보니 하나도 없는 거예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던 호미들이 마을에 내려갔더니 있더라구요”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심지어 학교 물받이조차 사라지는 일이 빈번했다.
그는 “주민들이 네꺼, 내꺼 구분 없이 학교 물건이니 우리 것이란 생각으로 가져다 쓰시더라구요”라며 무덤덤해했다.

▲ 1만 여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는 추억의 박물관. 어르신들에겐 어릴 적 추억의 공간이자 자녀들에겐 부모님의 학창시절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민들과 허물없이 지내기 위해 허문 담장처럼 그는 마음의 담장을 없앴다. “마음껏 갖다 쓰시라고 했어요. 20개 살 것 40개 사면 되니까”

길이 좁아 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오지 못해 주민들이 애를 먹자 그는 앞장서 해결했다. “주민이 원하는 건 학교가 나서서 해결해 주자 학교에 무슨 일이 생기면 주민들이 적극 나서서 동참해주세요”

그 후 그는 지역에 눈을 돌렸다. 문화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정선은 문화소외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 곳 학생 대부분은 문화예술프로그램에 참가해 본 경험이 없는데다 생활 속 문화 환경이 열악한 실정이었어요”

인근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역사 속 마을 배우기 ▲동네야 놀자 ▲아라리촌 예술캠프 ▲안경다리 공간캠프 등 학생들이 주최가 돼 마을에 문화를 덧씌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마을은 변했다. 마을이 변하자 지역민들도 변했다. 생기를 되찾은 마을에 힘을 보탠 건 2004년 문을 연 ‘추억의 박물관’이었다. 1만여점의 근현대사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추억의 박물관은 동네 역사가 숨쉬고 있다.

지역민들의 소소한 일상이 담긴 사진전을 개최해 지역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함께하는 공간을 마련해 간다. 

▲ 추억의 박물관 복도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진 대표의 학창시절. 어렸을 적 그가 썼던 학용품과 장난감들은 모든 이의 추억이 됐다.
가보고 싶은 박물관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추억의 박물관 입장권은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동그란 딱지다. 동네 식당이나 상점에서 2천원 이상 물건을 사면 받을 수 있는 딱지는 추억과 함께 재미를 선사한다.

입장권인 딱지를 소지하지 않은 경우 벌금 1천원을 물게 된다. 벌금은 동네 독거노인 분들의 연탄값으로 쓰인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의 12년 노력의 결실인 정선아리랑학교는 더디지만 꾸준한 노력을 통해 지역 속에 자리매김했다.
“폐교를 어떻게 활성화 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폐교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먼저 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

지역과 함께 상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폐교가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연간 8만여명의 방문객이 다녀가는 나주 천연염색문화관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염색된 천을 살피는 학생들의 모습.

“주인을 찾습니다”

광주전남 미활용 폐교 236개…적극 활용 방안 모색해야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던 폐교활용 방안이 적극적으로 논의되면서 폐교는 이제 지역 내 새로운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폐교는 다양한 활용을 통해 지역 내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지역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2008년 현재 전남지역 폐교는 638개에 달한다. 전남은 현재 236개 학교가 방치된 상태로 남아있다.

전국적으로 폐교 활용이 적극 논의되고 있지만 타 도시에 비해 많은 폐교가 남아있는 전남 경우 폐교 활용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용교 전남도교육청 재무과 관재담당은 “지리적 위치가 좋은 폐교는 금방 매입되거나 대부되지만 폐교된 지 오래된 학교나 농촌 깊숙이 자리한 폐교 경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활용되고 있는 전남 지역 폐교 402 군데를 살펴보면 개인 활용 308곳, 지자체 82곳 순이며 활용 현황을 살펴보면 교육·수련시설 135곳, 문화예술·생산시설 117곳으로 높았다.

지자체가 적극 나서 활용하고 있는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곳은 나주다.
나주시는 1989년 폐교된 다시초등학교 회진분교 터에 천연염색문화관을 조성해 새로운 문화수입을 창출하고 있다.

연간 8만여명이 다녀가는 천연염색문화관은 일손이 남는 농한기엔 지역민들에게 소일거리를 제공, 부수입을 창출해주는 등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로 거듭나고 있다. 천연염색문화관이 나주의 랜드 마크로 떠오르며 각광받자 나주시는 폐교 4군데를 매입해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민철 나주시 기획홍보팀장은 “폐교는 개인 땅에 비해 값도 저렴하면서 지리적 위치가 좋아 활용성이 높은 편이다”며 “당장 사용하지 않더라도 폐교를 매입해두고 추후 필요할 때 언제든지 시설로 이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담양군 고서면 주산리 소재 담양 예술인 창작마을은 고서초등학교 주산분교를 지역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공간이다. 놀이패 신명을 비롯 전문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펼치며 지역민과 한데 어울려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겨울 문화 사랑방 ‘동장군아 물럿거라’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지역민 모두 참여해 부채 만들기, 천연염색체험, 도자기 만들기 등 체험활동을 펼친다.

시민들의 뜨거운 반응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직 제 짝을 찾지 못해 방치된 전남 지역 236개 폐교들이 성공적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지역 내 충분한 여론 수렴을 통해 지역과 함께 상생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