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은 들어라!
이문열은 들어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7.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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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한국작가회의 충북지회장)

 이문열은 들어라. 물론 이문열은 이 글을 보지도 않을 것이고, 듣지도 못할 것이다. 상관없다.

나는 현재의 이문열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인식을 가진 가상의 이문열에게 쓰는 것이다. 혹 저승에서 이 글을 보더라도 내 성명 김가(金哥)를 입에 담지 말 것을 부탁한다.

나 또한 이문열 삼자를 지면에 쓰는 것이 수치스럽기는 하지만 개과천선하기를 기대하면서 몇 자 적선(積善)을 하노라.  

당신 같은 사람이 작가라는 것은 한국문학의 커다란 불행이다. 문학을 희롱하고 글을 무기로 인간을 능멸하는 그대의 언행으로 인하여 청천동지(靑天冬至)에 벽력경천(霹靂驚天)을 하고 있다.

한갓 재주로 글을 쓰는 자를 일러 문사(文詐)라 이른다. 글을 가지고 사람을 현혹하고 글로써 세상을 기망하며 글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을 했던 작가들은 인류문화사에 허다히 많았다.

비록 당대에 이름이 홍진(紅塵)처럼 법석댄 적은 있으나 그 저열한 본색을 숨기지 못하여 종당에는 이슬처럼 스러져 버렸다. 이문열 그대 또한 시간의 마모에 스러져버릴 것이므로 내가 가련하게 여기는 것조차 사치다.

대저, 몇 권의 소설로 역사를 속일 수야 있겠는가. 인간과 역사를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할 작가가 오히려 시정잡배와 같은 수준의 의식이라는 점에서, 그대에게 베풀어진 한 줌 자비도 아깝다.

소설가의 허명을 얻은 그대가, 약간의 재주가 있어 대중들에게 회자된다 하여 그것이 곧 인간의 품격이나 문학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이가(李哥), 당신도 잘 알 것이다.

알량한 솜씨로 이름을 팔면서 곡문아세(曲文阿世)하는 행색도 가소(可笑)하거니와 반역의 포퓰리즘에 양심을 팔아버린 정경 또한 처량하다. 분서갱이(焚書坑李)의 교훈도 잊고 새남터 망나니처럼 자진(自盡)하는 너울 칼춤도 이제는 보기 싫다.

그대는 이 땅의 다중(multitude)과 진보에 무슨 원한이 있어, 시시때때로 관군 토벌대의 비장(裨將) 노릇을 하는 것이냐? 자고로 민란이 나면 임금도 숨을 죽이고 숙연한 자세를 했거늘, 항차 촛불 의병을 향해 토벌가를 지었으니 작가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가?

선량한 시민들을 홍위병으로 묘사하던 버릇을 못 버리고 2008년 6월 17일, 국가와 민족을 위하자는 다중의 촛불시위를 집단적 난동과 허황된 작란(作亂)이라고 하는 그대 영혼은 대체 무슨 병이 든 것이냐?

 이가여, 촛불 의병을 토벌하자는 해괴한 토벌군창의가는 수구의 공동묘지에 가서 불러라. 정신분석학적으로 그대의 분열증세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닌즉, 그렇다면 우리는 월북한 좌파인 그대 부친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의 그대는 부의식 상실감과 고아의식에 서러웠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인적 원한을 다중에게 복수하는 이 죄를 짓고서 어떻게 진보주의자였던 지하의 부친을 만날 것인가.

그대는 분명 <사람의 아들>이지 석태의 병졸이 아니건만 반역의 영웅을 자처하는 괴벽 또한 몽총하다. 우리 아량을 베풀어 한 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던져줄 수도 있었으나 저돌(猪突)한 그대는 그마저 박차 버렸다.   

 그대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관심이 없다. 부디 사모하는 대국(大國)으로 망명을 해서, 더 이상 한국을 핍진케 하지 말라. 이명박 연출, 수구보수 감독, 이문열 주연의 이 천박한 연극은 2008년의 불행이다.

그대 봉두난발을 <젊은 날의 초상>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우리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또 봉건가부장제라는 무대의 저질 코미디에 박장대소 할 겨를도 없다. 이가 집안의 문열, 반역의 포퓰리즘(populism)을 그만 걷어치우고 소설창작방법론 제일과 제일장을 다시 수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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