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위한 정치, 수탈독재는 필연
부자 위한 정치, 수탈독재는 필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6.26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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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동(전 광주대 교수)
대통령 이명박의 정치적 곤경은 명백히 예견되는 것이었다. 사회적 생존자원은 일정하고 조세수입도 한정되어 있는데 삶을 위한 의식주 수요자는 자꾸 늘어나고 삶의 욕구와 수준은 끝없이 높아지고 있으니 궁핍과 경쟁과 불만의 증대는 한밤중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닌가.

그가 애당초 후보로 나섰을 때부터 고통받는 가난한 계층 보다는 여유있는 부유층의 자산증식 욕구에 기대어 자신의 경제성장 능력을 과장되게 뽐내면서 모두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주겠다는 허풍을 떨면서 당선되었다.

부유층 유권자들과 이기배타적 패거리 의식이 강한 친미 종교집단은, 전사회적 자원배분의 형평성이나 인도주의적인 상호 이해와 협력에 의한 평등 화해원칙과 경제부흥 원리에는 눈을 감고 자기네 집단의 이기배타적 허욕에만 눈이 멀어있었다.

부동산깨나 가진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돼지의 이성’ 수준에서 정치와 선거의 판단을 내렸던 것같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들에게만 승리의 영광을 주게되어 있다고 믿고 기도했으니까.

생각해보라. 소유자산과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내야할 세금을 안낸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예산지출이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수출증대의 공적을 뽐내며 전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늉을 하고 있는 재벌이나 대기업들이 화물운반 요금을 몇 년 씩이나 고정시켜 놓는다면, 이같은 독식은 강도에 가까운 착취며 사기행위이다.

게다가 화물연대가 차를 세워놓을 수밖에 없다며 협상을 요구하자, 맘대로 하라면서 협상에는 응하지 않고 대체 운송수단을 마련하겠다며 배짱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정글속의 짐승보다 더 못한 사악한 무리임이 분명하다.

건설업자들의 폭리와 노예에 가까운 싸구려 노동에 시달리는 건설노동자들의 참상은 구태여 설명을 요하지 않는다. 하청에 하청으로 착취의 사다리가 겹겹이 연결되어 있고 최상층 수탈자들은 직접 정치꾼이 되거나 부정한 정치자금을 통해 정치꾼과 연결되어 있다.

하기는 거의 모든 정치꾼들이 피땀어린 노동의 대가를 직간접 수탈에 의해 ‘정치후원금’이라는 이름으로 합법화하여 쓰고 있다.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자마자 미국 상전에게 달려가 자랑하기 바쁘게 광우병 우려의 쇠고기 장사꾼들에게 전국민의 입을 볼모잡혀놓고 왔다.

그러고는 “싫으면 안사 먹으면 될 것 아니야”라며 완전히 사기꾼의 배짱까지 부린다. 그래도 “신앙의 형제들”은 항의하는 국민들을 사탄이라면서 극진히도 그를 감싸주는 눈물겨움을 보여주었다.

간악한 일본제국의 침략과 英·佛·美의 분할점령으로 인한 참혹한 고통은 중국의 농민대중을 일깨워 민족해방과 계급혁명을 가능케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었다.

공부하기에 바빠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던 초·중·고 학생들과 유모차를 끌고나온 어머니들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인정머리도 없고 아둔하고 이기적인 정치꾼을 ‘반면교사’로 둔 덕에 촛불집회를 여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외부로부터의 자주성과 평등 복지사회 건설의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친일파 전통 신문들의 사악성을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던 대부분의 집회 참가자들이 조·중·동의 반민중·반공동체적 왜곡보도 범죄를 간파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귀중한 반면교사들의 공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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