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와 트리클 다운 효과
경제 살리기와 트리클 다운 효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6.0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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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창(영남대 독문과 교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결정적인 힘은 그가 내건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일 것이다. 유력 신문들에 의한 반복 주입도 크게 작용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고달픈 현실을 장밋빛 낙원으로 바꿔준다는 달콤한 약속에 ‘그래 한번 믿어볼까’ 하는 심정으로 표를 몰아준 것이었다.

특히 먹고 살기가 힘들고 일자리 찾기에 지친 서민들은 경제를 살린다는 말에 현혹되어 규제완화나 세금 감면, 노동유연성 강화, 민영화 같은 경제 살리기의 방안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꼼꼼하게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

BBK나 한반도 대운하, 한미 FTA 등 다른 쟁점들에 묻혀버린 탓도 있고, 경제적 쟁점들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설명해주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탓도 크다.

사실 나만 해도 걸핏하면 영어로 된 전문용어를 구사하는 경제관료나 학자들이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가 어떻고 하면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트리클 다운’이란 ‘물이 저절로 흘러 넘친다’는 뜻으로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덩달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론이라고 한다.

가령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법인세가 경감되면 기업 투자가 늘어 근로자의 급여가 올라가고 소비가 늘면서 주변 음식점이 잘 되면 저소득층에도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 같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요약한 셈이다. 

쉽게 말하자면, 국토 균형발전이나 공정 거래를 위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복지 확대나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한 각종 세금을 줄이고, 노조의 힘을 약화시켜 노동자 해고를 마음대로 하게 하면, 대기업과 재벌, 부자들이 돈을 더 잘 벌게 되고, 그러면 기업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살아나고 저소득층 서민들도 떡고물을 얻어먹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정책은 1970년대의 박정희 대통령과 80년대 말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에 시행되었는데, 미국에서는 그후 폐단이 드러나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철폐되었다고 한다.

저명한 경제학자인 하버드 대학의 리차드 프리만 교수도 이를 1990년대 초반 이후 한물 간 정책으로 못박으면서 민영화와 노동유연성을 강조하던 세계은행과 IMF도 시장만능주의는 안된다면서 태도를 바꾸었다고 전했다.

그러면 이제는 실효성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2, 30년 전의 정책이 어떻게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제 살리기 비법으로 등장했을까?

그 이유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보좌관들이 1980년대와 90년대에 미국서 공부한 사람들이라서 당시 유행하던 경제정책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써 우리나라 경제관료들의 현학적이고 전문적인 이론들이 실은 일반인들이 함부로 시비를 걸 수 없게 포장된 궤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 가운데 하나는 풀렸다.

이명박 정부의 장관과 보좌관들이 하나같이 ‘강부자’인 까닭을 세상물정에 어두운 나는 약 한 시간에 걸친 인터넷 검색을 통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 대기업과 재벌,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려면 ‘강부자’만큼 적합한 인물들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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