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도 꽃과 같이
저 산도 꽃과 같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5.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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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권행 (서울대학교 불문과 교수)

우리에게 1년 중 5월은 유난한 달이다. 광주와 호남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지만, 어떻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5·18 광주 항쟁기념일까지, 온갖 ‘본질적인’ 날들이 이 달에 모여 있을까.

아파트 화단엔 아주 진한 붉은 빛 장미가 한껏 짙은 향내와 함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먼 산엔 꿩이며 뻐꾸기, 딱따구리, 그리고 가지가지 새들이 생명의 노래를 쏟아 놓는다.

그러고 보면 5월엔 온갖 상서로운 인간사회의 약속들이 함께 있다는 생각도 든다. 5월 1일의 노동절, 그리고 부활절과 그리 멀지 않게 대체로 5월에 만나게 되는 석가탄신일도 그렇다. 어쩌다 우리 역사는 또, 5·16의 뒤에 5·18이라는, 저 영원한 ‘민주주의’의 일대 사건을 희망의 5월에 새겨 놓은 것일까?

경상도 출신으로서 빈민운동의 대부로 추앙받는 고(故) 제정구 선배가 어느 날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처가가 광주였던 그는 광주를 처음 오게 된 날, “아아, 무등산을 보니 이제야 비로소 왜 광주에서 5·18이 일어났는지 알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호남이 없으면 어찌 조선이 있었으랴’하고 이야기한 충무공의 생각도 그렇지만, 나는 호남인의 정서에는 줄곧 어떤 강렬한 에너지가 전승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거나 광주에서 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은 철마다 그 모습을 바꾸면서도 형언하기 어려운 저 오롯한 모습의 무등산을 다들 가슴에 품고 살리라. 50년대 어린 시절 송정리에서 바라본 무등산은 그 밑의 조선대학교와 함께 그냥 하얀 빛의 설산(雪山)같아서 어린 아이에게는 다가갈 수 없는 먼 세계의 신비감이 있었다.

조금 더 나이 든 중·고교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이따금 눈을 들어 바라보는 그 산은 짙은 초록이거나 청색으로 다가와 나를 어루만져 주고, 사춘기의 나를 휩싸는 온갖 열정과 막연한 동경을 이해하며 다독여 주었다.

그러니 서울서 지내다 돌아오는 광주역 광장에서 나는 제일 먼저 무등산을 바라보았을 수밖에. 거기 그대로 있으면서 너 왔느냐고 끄덕여주는 것 같던 그 산을 아무도 쉽게 잊을 수 없으리라.

먼 외국에 나가 떠도는 시간 중에도 나는 참 자주, 무등산을 떠 올리고 무등산으로부터 위로 받았던 기억이 있다. 5월의 시민들이며, ‘광주여 영원하라’를 작곡한 예술가며, 목숨을 건 망명과 헌신적 해외민주화 운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이들의 가슴에는 알게 모르게 무등의 모습이 살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느 날인가, 친구의 소개로 쿠바 노래패,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한 노래에는 “사랑을 잃은 내 슬픈 마음, 길가의 저 꽃에게 말할 수 없네. 내 이야기 들으면 저 꽃의 영혼, 슬픔으로 시들고 말테니”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이었다. 아, ‘꽃의 영혼’이라니... 나는 내 자신과 광주의 많은 사람들 역시 무등의 영혼을 마주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어떤 자들이 5월을 향해, “네 영혼을 다오, 나 너를 부자로 만들어 줄테니”하고 외친다한들, 어쩌겠는가? 무등의 영혼은 저기 그냥 푸른 빛으로 말없이 빛나고 있을 뿐, 돈을 들고 찾아가려하면 다가가는 만큼 마냥 뒤로 물러나 버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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