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의 언어식민지화 狂風
세번째의 언어식민지화 狂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2.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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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박지동(전 광주대 교수)

한문자와 중화의 종속국 백성 신분으로 “동방예의지국 소속”임을 자랑하며 살아가던 조선조 500년이 끝나갈 무렵, 강도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총칼앞에 꼼짝못한 채 잡아먹혀 식민지로 떨어진 것은 바로 전국민의 노예근성과 무지 무능력 때문이었다. 개인이든 민족국가든 자주정신이 바로 노예의 삶을 막아주는 등대이며 구명정이자 방패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그 좋은 의사소통의 최고 수단인 한글을 만들어놓고도 “쌍놈의 글” “암클”이라며 천대하고 공자·맹자만 숭상하며 자기네 온 백성을 무지한 상태로 마소처럼 일만시켜 착취하면서 위아래 전국민이 돼지처럼 무지하게 살았으니 어찌 세상을 알고 침략자들의 검은 속셈에 대항하여 단결을 할 수 있었겠는가.

조선의 양반귀족들은 孔孟의 제자임을 뽐내며 자기 자식들마저도, 피땀흘려 의식주를 생산 공급해주는 은혜로운 동네 어른들에게 “……했느냐” “……하여라”하고 호령하도록 가르치는, 그야말로 “쌍놈의 양반자식들”로 만들어 놓음으로써 천년 만년 대대로 이웃사람을 짐승처럼 부려먹는 노예로, “쌍놈” “아랫것들”로 천대하게 만들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오늘날 화폐의 인물로 존경받고 있는 이퇴계나 이율곡도 “인간의 평등”이나 “착취노동을 막자”는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제아무리 절개와 지조가 어떻고 철학의 경지가 어디에 이르렀다고 읊어댔지만 사람이 사람을 짐승처럼 부려먹고 자기 새끼들만 사람이고 대대로 지배하는 자리에서 배불리 먹고 살게하려했다면 존경은 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었어야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아무튼 의사소통 수단인 한글과 평등 민주정신을 전혀 평소의 삶과 더불어 익히지 못한 조선의 공동체사회는 침략자 일제의 늑대이빨 앞에 이르러서야 겨우 어리석었음을 원망하고 때늦었음을 한탄하며 자멸의 시궁창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1905년의 을사늑약, 1907년의 국군해산, 1910년의 합병을 한결같이 조선민족의 상하가 모두 애원해서 이루어진 것처럼 만들었고, 360명의 군수라는 자들이 하나도 이탈없이 조국을 배반하고 식민지 벼슬아치가 되었다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이 모든것이 이른바 요새말로 「여론조작」의 결과였다. 침략자와 그 앞잡이들의 사전공모에 의해 무지한 백성들은 개돼지 취급을 받으며 흩어져 몽둥이와 총칼 앞에서 고문과 학살과 노예노동에 시달렸다.

그래도 용기있게 들고 일어난 3.1봉기와 희생 덕분에 일본놈들이 마지못해 허가해준 조선·동아와 같은 신문집단들은 또다시 악성 친일파가 되어 동포형제들의 자주독립 투쟁을 “천황폐하의 역적” “빨갱이” 등의 호칭으로 악마취급하여 파멸시켜갔다. 하지만 동포형제들은 끈덕진 40여년의 일본어 학습 강요에도 불구하고 민족동포의 슬기와 자주적 본능으로 이겨냈다.

이제 다시 “하나님 품밖의 동포형제자매들을 사탄으로 취급하여 증오·적대하는 하나님 품안의 형제들을” 형제국의 언어로 순치시킬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외세 무리들이 제3차 언어식민지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외세 앞잡이들이 목소릴 높이더라도, 그리고 「자주정신」이라는 장애물이 아니더라도 또다시 “말의 노예”를 강제로 만들려는 광신자들의 의도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며 실현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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