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미친놈 소리를 듣더라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8.01.21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가밝아오니]김승환(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이재오란 사람이 있다. 한때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오랜 세월 옥살이를 하여 상당히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보수우파로 전향하여 이명박 정권의 핵심인물로 대통령 선거 전부터 초목(草木)을 불안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코메디와 같은 발언을 했는데 실소를 넘어서 아연실색의 황당함을 느낀다. 그것은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대운하를 추진할 것’이라는 대목이다. 이게 과연 국가의 최고층 책임자가 할 말인가. 운하가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설명과 국민의 동의를 얻어서 실행해야 할 사람이, 상무대에 있던 육군 포병학교 슬로건처럼 무조건 ‘나를 따르라’라고 한다면 국정(國政)을 적과의 전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미친놈’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거대한 경제 규모를 자랑하고 또 민주화된 사회에서 협치[governance]의 정신을 발휘하겠다는 말인가?

너무나 저질스러워서 논평할 가치도 없지만, 국가의 명운이 달릴 문제인 만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이명박 차기 정부는 7% 성장 공약을 슬그머니 버렸다. 그런데도 운하(運河)는 여전히 살아서 요동친다. 21세기와 같은 고도의 산업사회에서 중세 또는 근대에나 있을 법한 운하를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어서 무슨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민간자본(民間資本)을 유치하여 건설하므로 국민세금은 관계가 없다거나, 물류유통도 중요하지만 관광레저에도 필요하다거나, 경기부양을 선도하는 건설 산업이므로 필요하다거나 하는 온갖 궤변을 다 동원하여 기어코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니, 국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육지의 교통수단이나 하늘의 교통수단이 없거나 부족할 때 조운(漕運)은 대단히 유용한 운송수단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수나라나 당나라에서는 사람과 물자가 오고가도록 대운하를 만들었다. 수나라 시절 북쪽의 북경(北京)에서 출발하여 황하(潢河)와 양자강(揚子江)을 이은 다음 항주(杭州)까지 1,782km를 연결한 거대한 운하가 건설되었다. 이쯤 되어야 대운하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의 삼분의 일 정도 되는 운하를 가지고 ‘대(大)’자를 붙이는 것만 보아도 운하를 발상하는 사람들의 소인(小人)적 한계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일단 이름만이라도 경부운하, 호남운하 등으로 바꾸어서 인식의 균형을 찾기 바란다.

경부운하의 경우를 보자. 이 운하의 건설을 통하여 얻게 될 이익이 없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이고 그간 찬성하는 사람들의 선전선동이 적지 않았으므로 그 이익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손해는 없을까? 있다. 백두대간을 파헤치고 터널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낙차가 큰 갑문(閘門)을 만드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환경재앙이다. 이것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계산할 수가 있겠는가. 그 낙차의 갑문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심장은 무쇠로 만들어졌는지 조사해 보아야 할 일이다. 게다가 속도전(速度戰)이라고 해야 할 물류운송 시간이 서해 바다나 고속도로 또는 철도보다 오래 걸리는 경부운하를 누가 이용할 것인가? 스웨덴처럼 부자들이 요트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간다면 모를까 효용가치도 떨어지고 생태환경도 문제인 운하건설은 그야말로 계륵(鷄肋)이다.

이재오 의원측은 경제성장을 견인하기 위하여 대운하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정책으로 내세워서 당선된 것이며 당선으로 대운하의 타당성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당선자를 지지하는 것과 한반도 대운하를 지지하는 것은 다르다. 당선자라고 해서 모든 공약이 다 국민의 지지를 획득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최소한 국민투표라도 부쳐서 국민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철저하게 연구하고 그래도 필요하다고 결론이 나면 그때 착공하면 된다. ‘한반도 대운하는 필요하지 않다’라는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공약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하게 폐기하는 것도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대통령 선거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고 탓하지 않을 테니, 무모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재앙이 될 운하공약을 폐기해 주기 바란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