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한말
흉한말
  • 최훈영
  • 승인 2007.06.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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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영의 바른말 길잡이]

말 속에 나오는 사람에게 불손 말로 대접했을 때, 그것을 일컬어 흉한말(兇語)이라고 합니다. 공손 말이 되지 못하면 흉한 말이 되는 것인데, 공손말과 흉한말 사이는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말속에 나오는 3인칭을 대접함에서 판가름되는 것입니다.

“저의 아버님은 오늘 대구에 가셨습니다” 또는 “우리 아버님은 오늘 대구에 가셨네”라고 말해야 될 며느리가 “철이 할아버지는 오늘 대구에 가셨네”라고 말했을 경우 그 며느리는 자기 시아버지에게 불손한 말을 했고, 그 시아버지는 그 며느리로부터 흉한 말을 들은 것입니다.

어느 곳에 사는 부인이 먼 곳에서 찾아온 시부모를 보고 한다는 말이 “노인네 두 분이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오셨어요”라고 현관에서 말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부모를 노인이라고 부른다든지, 집단 자체를 업신여기는 “네”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라든지, 시부모를 한 분 두 분이라고 부른 것이라든지, 성그름말인 “요”를 사용했다는 것들이 모두 기가 막히는 소리들입니다.

이와 같은 자기 며느리의 말소리를 들은 뒤에 그 시어머니는 화병이 들어서 석 달 동안 앓아누워 지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이 집 며느리로 말하면 광복 후 여러 해 동안 학교를 다녔으나 가정언어를 배운 바가 없었고, 가정에서도 그것을 배운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는 사람으로 되었던 것입니다.
바르게 말할 줄 모르다보니 어른 섬기기를 할 줄 모르게 됩니다. 어른 섬기기를 잘 하려고 하면, 무엇보다 앞서 바르게 말할 줄 아는 가정언어를 배워야 됩니다. 말 그것이 곧 사람을 만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살피건대, 〈저의 아버님〉〈저의 어머님〉또는 〈우리 아버님〉〈우리 어머님〉이라는 직접 부르기로 임자말을 만들지 아니하고, 자기 자식인 철이를 끌고 와서 〈철이 할아버지〉〈철이 할머니〉라는 간접 부르기로 임자말을 만드는 소위 그 “흉한말”은 지난날 하인배들이 상전 앞에서 상용했던 말하기였습니다.

듣는 이를 공경해야 될 경우에는 〈저의 아버님, 저의 어머님〉이라고 해야만 되고, 듣는 이를 공경하지 아니해도 될 경우에는 〈우리 아버님, 우리 어머님〉이라는 말로 임자말을 만들어야 합니다. 젊은 며느리는 이 말이 몸에 배어지도록 거듭 소리 내어 익혀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어른이 아랫사람들에게 말할 경우에는 간접 부르기로 임자말을 만드는 것이 어른말하기의 정법입니다. 이를테면, 손부나 며느리를 부를 때 “철이 어미, 이리 오너라” 같은 말하기가 어른말하기의 왕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늙은이가 남의 며느리나 손부를 보고“석이 어미가 아닙니까”라고 했을 때 그 젊은 부인으로부터 뺨을 맞아도 아무리 이 늙은이를 도와 줄 사람이 나오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 자식을 앞세워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이야말로 지난날 하인말(下人語: 奴婢語)을 익힌 사람으로 됩니다. 말 익힘은 우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난날 자기 집 신분을 명경처럼 밝혀서 알려주는 셈이 됩니다. 이토록 자상하게 알려주었는데도 삼가지 않을 부인이 혹시라도 있을는 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카페 최훈영의 언어예절 http://cafe.daum.net/yez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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