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비주류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의 주류 될 것
중국·동남아·러시아 등 세계 각지 돌며 현지체험
이렇게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루 다 말 못할 부모들의 속상함은 둘째 치고 어른들과 대안교육에 실망할 아이들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최기철 교장(45. 국어)은 “믿고 따라 준 학부모들과 넉넉한 품으로 감싸준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견뎌줬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훨씬 의연해진 것 같아 기쁘다”며 대견해했다.
3년 중 절반은 해외에서 생활
지난해부터 같이 생활해 온 2, 3학년 15명과 올해 입학한 신입생 15명 등 중등과정 30명의 학생을 외부강사 6명을 포함한 16명의 교사진이 지도하고 있는 곡성 평화학교는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학생 배출을 목표로 한다.
초창기 대안교육이 소위 ‘타잔 교육’이라 불리는 활동 중심의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시대를 선도해 나갈 지식을 쌓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에포크(주기집중) 수업방식. 머리가 비교적 맑은 오전에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지식교과를 위주로 1교시 100분씩 몰아쳐서 과목을 끝내는 방식이다. 이는 3년 중 절반을 중국, 동남아, 러시아, 유럽 등 외국에서 생활하는 학사일정을 효율적으로 소화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공교육에서 12년 간 교편을 잡았던 최 교장은 “띄엄띄엄 과목을 배치하는 일반학교보다 오히려 이해력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교습방법”이라고 장점을 설명했다.
오후에는 음악·미술·체육 등 감성교과와 목공예·서예·텃밭 가꾸기 등의 자립교과를 적절히 배치했다. 입시대비에 여념이 없는 일반학교에서 감성교과는 찬밥 신세인 반면 평화학교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사물놀이, 오카리나, 바이올린 등 틈틈이 익힌 연주 실력은 해외에서 즉석밴드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국생활에 도움을 준 외국인들에게 할 수 있는 작은 고마움의 표시로도 손색이 없다.
최 교장은 장기간 해외이동수업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비주류이지만 외국에 나가서 실제로 생활해 보면 그 비주류가 곧 주류가 되리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세상은 ‘부’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치지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 공교육은 혁명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게 저희들 생각입니다.”
지역밀착형 토종 대안학교 꿈 꾼다
미인가학교인 평화학교에 입학하려면 입학금 100만원을 포함해 500만원의 기부금을 내야한다. 지난해 말 기숙사 한 동을 지었지만 추가로 시설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부금은 시설투자가 어느 정도 끝나면 받지 않을 계획이다. 납부금은 기숙사 비를 포함해 월 40~60만원 수준. 해외문화체험 등 체험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경비는 왕복 항공료 정도만 부담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이는 그 간의 인맥과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한 평화학교만의 비법이다.
평화학교와 같은 생태학교형 대안학교는 대부분 1982년 영국 하트랜드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 모델을 따왔다. 이 학교는 주로 생태와 노작, 지역사회와 학교의 결합을 중시한다. 평화학교는 하트랜드 작은학교를 근간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토착화된 대안학교를 꿈꾼다.
교사들도 곡성 출신이 많은 편. 영어 원어민 강사도 곡성에 시집 온 이주 여성들 중 고등학력 소지자를 채용했다. 최 교장은 앞으로 곡성에 2년제 국제학교 설립과 흥사단 고등학교를 유치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자기 가마터와 단식원 운영 등에서 돌파구를 찾아볼 생각이다.
이달 14일에는 제주 들살이학교, 경남 산청 민들레학교, 강진 늦봄문익환학교와 공동으로 체육대회도 예정돼 있다. 대안교육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아이들끼리도 거울삼아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왜 공부해야 해요?”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대답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이 대안학교에서 일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사랑하는 우리 딸 소현아!
소현아! 봄을 나르는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다. 이런 날은 네가 더욱 보고 싶다. 네 스스로 삶을 찾고, 자신이 누구인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엄마 아빠가 고민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야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끝에 대안학교 교육을 네게 소개했다. 그때 넌 우리를 믿었는지 선뜻 지금의 곡성평화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하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