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사랑·평화 배우며 행복 찾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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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7.04.05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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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대안 교육현장⑥]곡성 평화학교

아직은 비주류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의 주류 될 것
중국·동남아·러시아 등 세계 각지 돌며 현지체험

 

▲ 곡성 평화학교 전경.
▲ 최기철 교장.
전남 곡성군 석곡면 염곡리의 아담한 폐교를 수리해 ‘곡성 평화학교’의 문을 연 것이 지난해 5월. 일부 교사, 학부모들이 재단과의 의견 마찰로 경남 산청의 중등 대안학교인 ‘간디 마을학교’를 떠나 터를 잡은 곳이 이 곳이다. 각 지역의 폐교를 조사하다 마침 학교선진화 작업을 진행 중이던 곡성군과 인연을 맺게 됐다. 얼마 전에 기숙사를 짓고 이곳저곳 손을 보느라 조금은 어수선해 보였지만 아이들과 교사들의 손 때로 학교는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루 다 말 못할 부모들의 속상함은 둘째 치고 어른들과 대안교육에 실망할 아이들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최기철 교장(45. 국어)은 “믿고 따라 준 학부모들과 넉넉한 품으로 감싸준 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잘 견뎌줬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훨씬 의연해진 것 같아 기쁘다”며 대견해했다.

3년 중 절반은 해외에서 생활

지난해부터 같이 생활해 온 2, 3학년 15명과 올해 입학한 신입생 15명 등 중등과정 30명의 학생을 외부강사 6명을 포함한 16명의 교사진이 지도하고 있는 곡성 평화학교는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학생 배출을 목표로 한다.

초창기 대안교육이 소위 ‘타잔 교육’이라 불리는 활동 중심의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시대를 선도해 나갈 지식을 쌓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에포크(주기집중) 수업방식. 머리가 비교적 맑은 오전에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지식교과를 위주로 1교시 100분씩 몰아쳐서 과목을 끝내는 방식이다. 이는 3년 중 절반을 중국, 동남아, 러시아, 유럽 등 외국에서 생활하는 학사일정을 효율적으로 소화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공교육에서 12년 간 교편을 잡았던 최 교장은 “띄엄띄엄 과목을 배치하는 일반학교보다 오히려 이해력과 집중력을 높일 수 있는 교습방법”이라고 장점을 설명했다.

오후에는 음악·미술·체육 등 감성교과와 목공예·서예·텃밭 가꾸기 등의 자립교과를 적절히 배치했다. 입시대비에 여념이 없는 일반학교에서 감성교과는 찬밥 신세인 반면 평화학교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사물놀이, 오카리나, 바이올린 등 틈틈이 익힌 연주 실력은 해외에서 즉석밴드로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국생활에 도움을 준 외국인들에게 할 수 있는 작은 고마움의 표시로도 손색이 없다.

최 교장은 장기간 해외이동수업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비주류이지만 외국에 나가서 실제로 생활해 보면 그 비주류가 곧 주류가 되리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세상은 ‘부’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치지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 공교육은 혁명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게 저희들 생각입니다.”

▲ 2학년 학생들이 프로젝트 수업으로 일주일 만에 만든 원두막. 선생님 손을 빌리지 않고 아이들이 자료를 찾아 직접 제작했다.

지역밀착형 토종 대안학교 꿈 꾼다

미인가학교인 평화학교에 입학하려면 입학금 100만원을 포함해 500만원의 기부금을 내야한다. 지난해 말 기숙사 한 동을 지었지만 추가로 시설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부금은 시설투자가 어느 정도 끝나면 받지 않을 계획이다. 납부금은 기숙사 비를 포함해 월 40~60만원 수준. 해외문화체험 등 체험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경비는 왕복 항공료 정도만 부담하면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이는 그 간의 인맥과 노하우를 적절히 활용한 평화학교만의 비법이다.

평화학교와 같은 생태학교형 대안학교는 대부분 1982년 영국 하트랜드 지방의 ‘작은 학교’에서 모델을 따왔다. 이 학교는 주로 생태와 노작, 지역사회와 학교의 결합을 중시한다. 평화학교는 하트랜드 작은학교를 근간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토착화된 대안학교를 꿈꾼다.

교사들도 곡성 출신이 많은 편. 영어 원어민 강사도 곡성에 시집 온 이주 여성들 중 고등학력 소지자를 채용했다. 최 교장은 앞으로 곡성에 2년제 국제학교 설립과 흥사단 고등학교를 유치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자기 가마터와 단식원 운영 등에서 돌파구를 찾아볼 생각이다.

이달 14일에는 제주 들살이학교, 경남 산청 민들레학교, 강진 늦봄문익환학교와 공동으로 체육대회도 예정돼 있다. 대안교육에 대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아이들끼리도 거울삼아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왜 공부해야 해요?”라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대답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란이 대안학교에서 일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 지역사회에 대한 학교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2시간씩 마을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숫자를 가르치는 문해(文解)교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또 매주 금요일에는 본보기가 될 만한 지역 어른을 모시고 초청강연회도 갖는다.
* 곡성평화학교 학부모 대표인 소현이 아빠 정인호 씨가 본지에 기고해 주신 글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소현아!

소현아! 봄을 나르는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이다. 이런 날은 네가 더욱 보고 싶다. 네 스스로 삶을 찾고, 자신이 누구인지,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엄마 아빠가 고민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야 행복한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 끝에 대안학교 교육을 네게 소개했다. 그때 넌 우리를 믿었는지 선뜻 지금의 곡성평화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하였지.

여기저기 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선택한 학교였지만 막상 너를 그 학교에 보내고 걱정도 많았다.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혹시 잘 못된 길로 가지나 않을까? 우리가 확인 할 수 없는 낯선 곳에서 헤매지나 않을까? 하루 종일 공부에만 매달리는 일반학교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까? 춥지나 않은지? 덥지나 않은지? 참 많은 걱정 속에서 아빠나 엄마 그리고 너 조차도 낯선 대안 교육이 시작되었다. 다 쓰러져가는 폐교를 수리해 교실을 만들고, 기숙사가 없어 교실 한 켠에서 잠자면서도 투정 한 번 하지 않은 너를 보며 아빠는 더 많은 인내와 희망을 위한 수고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단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너는 너무나 밝게 잘 자라주었구나!

네가 떠난 지 어느덧 일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이제 엄마 아빠는 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모든 것을 정말 잘 해내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학교와 집을 오갈 때 혼자서 큰 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홀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아! 이제 우리 딸이 다 커서 둥지를 떠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마음 뿌듯하였단다. 엄마 아빠는 네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너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불투명한 목표와 습관화된 학교생활. 밤12시가 되서야 학원에서 돌아오고, 또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하루 종일 공부에 찌들린 그런 삶을 너에게 권하고 싶지 않더구나. 처음 얼마간은 자유롭게 주어지는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기도하고, 몇 안 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아 힘들어 할 때도 있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만의 방법으로 삶을 설계하고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는 너를 발견했을 때 아빠는 무척 기뻤단다.

사랑하는 소현아! 아빠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부모님이야. 요즘 요리 동아리에 들었다지? 요리를 잘 해서 멋진 주방장이 되어보렴. 네가 요리한 음식에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너 또한 즐겁지 않겠니? 아니면 엄마가 추천하시는 사회복지 분야 일을 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된다. 평생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무엇을 하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아빠는 기도한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다. 기쁘고 즐거울 때도 있지만 힘들고 어려울 때도 반드시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겸손 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루하루 생활하길 바란다.

-우리 집 보물 1호 소현이에게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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