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바람 끝, 홍매화 피고
시린 바람 끝, 홍매화 피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3.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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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와그림]조진태

비가 내리더니 꽃이 피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자리다
그 순백의 이름으로도 어쩌지 못해
이야기는 꽃을 핀다

길을 걸었다
이미 계곡을 다 채우고서 물은 흘렀을 것이다
때로 잡스런 인간의 땀이 어린 발자국도
마저 어루만지고서
시린 바람은 나뭇가지에 머물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 봄은 낯설지가 않다
나의 어머니는 싹이 돋을 무렵이면
세상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연분홍 매화 꽃 핀 자리
추운 겨울을 지난 씩씩한 사내의 이야기들

또르륵 빗방울 하나 나무가지에 머물다가
싱싱한 초록에 와아
어쩌지 못할 햇살로 흠뻑 쏟아지는 것이다
세상이 언제 적막한 것이었는가 싶어 봄들
앞다투어 수인사하고
사람들 소리마저 마침 홍매화 꽃잎으로 환해지는 것이다

▲ 김영삼 作 '터'
[시작노트]

두보는, 뭐가 바빠서 봄은 서둘러 오는 것일까라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봄을 기다렸던가. 그때 그 봄은 꽃향기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짱짱한 얼음을 깨고 구들장의 냉기를 녹이며 오는 것이었다. 그런 지금 봄은 기억으로 온다. 기억은 사람을 얼마나 둥글게 만드는 것인가. 끝간 데서 꽃이 피더라도 매화 향은 모음으로 코끝을 맴돌다 햇빛에 산화한다. 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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