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은 나무가 훌륭한 재목이 된다
다듬은 나무가 훌륭한 재목이 된다
  • 김경대 기자
  • 승인 2007.03.22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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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대안 교육현장④]보성 용정중

학생들 장래 꿈 갖도록 하는 것이 교육목표
엄격한 규율과 체험학습 위주의 교육프로그램
 

▲ 용정중 전경.
전남 보성군 미력면에 위치한 용정중학교는 지난 2003년에 개교한 특성화 학교다. 지난해까지는 한 학년에 한 학급(24명)이었다가 올해 신입생부터 두 학급(18명)으로 늘려 받았다.

모두 84명의 학생들을 11명의 교사와 15명의 특성화 강사 등 30명의 교직원이 돌본다.

광주·전남 지역에 중학교 특성화학교가 흔치 않은 탓에 올해 신입생 경쟁률은 남학생이 5:1, 여학생이 3:1에 달했다.

학교를 방문한 지난 15일에는 마침 3박 4일 일정으로 소록도 봉사활동을 떠났던 2, 3학년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1학년 신입생들도 마찬가지로 전날 2박3일로 충북 음성 꽃동네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소록도 봉사를 다녀온 2학년 김동원 군은 “처음에는 피곤함과 배고픔으로 하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지막 날이 되니 조금 더 잘해 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다”며 “내년에 다시 방문했을 때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건강하셨으면 한다”고 솔직한 소감을 밝혔다.

소홀히 하기 쉬운 중등과정이 가장 중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중간단계인 중학교 과정은 과도기적인 성격이 강해 부모나 학교에서도 소홀한 면이 없지 않은데 용정중은 이 시기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는 학교다.

초등학교 4, 5학년부터 중등과정에 이르는 이때가 학생들의 인격형성은 물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별력, 학문의 기초를 다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취침과 기상, 식습관, 보행, 독서 등 생활습관에서부터 시간을 계획성 있게 나눠 사용하는 방법까지 가르친다.

어떻게 보면 가정으로부터 일찍 독립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을 학교가 부모역할을 대신해 모든 걸 훈육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와 학부모와 학생의 심층면접을 통해 선발한 아이들이라 크게 모나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대안학교’로 알려져 있어서 뭔가 자율적인 분위기를 기대했다가 엄격한 규율과 꽉 짜인 교육 프로그램에 가끔씩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은 있다.

황인수(65) 교장은 “아이들이 간혹 가다 두발, 복장 등의 문제를 놓고 ‘자율’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아이들의 기호대로 모든 걸 받아 줘서는 안 된다”며 나무에 비유한 교육관을 설명했다. 나무를 마음대로 놔두고 키우면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목재가치가 없으며 가지를 다듬어주고 가꾸어 줄 때만이 쓸모 있는 목재가 될 수 있다는 것. 황 교장은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준비해 대안교육과 접목시켜야 하며 이벤트 식으로 흐르는 대안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장 담그기 - 자기들이 먹는 김치는 손수 담가야 한다. 학교매점이나 인근 가게가 없어 과자나 패스트푸드는 구경도 못한다. 세 끼 식사와 삶은 고구마, 감자 등이 저녁 간식으로 제공된다 (왼)▲ 소록도 봉사활동 - 2, 3학년 학생들이 새학기 시작과 함께 떠나는 소록도 봉사활동. 3박4일 간의 비교적 짧은 일정이지만 아이들마다 정신적으로 한 뼘씩 성장해서 돌아온다 (오)
 체험학습 위주의 특성화 프로그램 장점

용정중 학생들의 1년은 체험학습의 연속이다. 매 학년 초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에도 5월 지리산 종주, 7월 일본·중국 해외이동수업, 여름해양훈련, 9월 산사체험, 11월 지역문화탐방 등 체험위주의 특성화 프로그램은 학교의 큰 자랑거리다. 말 그대로 바쁜 일과 통에 ‘사춘기’가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체험을 다녀와서 보고서와 소감문을 쓰는 것은 필수. 보람을 느끼게 하고 소감문을 쓰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게끔 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원어민 교사가 지도하는 영어·중국어 강의, 1인 1악기 다루기, 1일 1시간 국선도 강습 등 실력배양과 함께 학생들의 문화교양, 기초체력 다지기 등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학교의 또 다른 이색프로그램 중 하나는 국제교환 장학생 프로그램. 지난해와 올해 졸업생 6명이 미국, 멕시코, 인도 등에 1년 과정으로 교환학생으로 가 있으며 용정중에도 미국과 멕시코 학생 1명이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

장래희망에 대한 반복교육, 진로 제각각

용정중은 학생들의 꿈과 목표의식을 심어주는 것을 최고의 교육목표로 삼는다. 개개 학생의 자질과 적성을 파악해 장래 희망을 위해 목적의식을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체험학습은 그런 교육목표의 일환이다. 즉흥적으로 자주 바뀌는 아이들의 희망사항이 어느 순간 확고하게 각인될 수 있도록 많은 체험을 통해 동기를 주고자 함이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의 고등학교 진학도 다양한 편. 골프, 에니메이션, 예술 분야 등 자신이 원하는 꿈을 찾아 특성화고 진학률이 특히 높다.

보성강이 옆으로 유유히 흐르고 앞산 등성이에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이 인상적이던 용정중 교정에서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의 ‘꿈’이 한창 영글어가고 있다. 

“네 꿈을 펼쳐라”
[인터뷰]황인수 용정중 교장

   
 
  ▲ 황인수 용정중 교장  
 
전남도교육청 의사국장 등을 거쳐 부교육감을 끝으로 퇴직한 황 교장은 요즘도 지인들로부터 핀잔을 자주 듣는다. 해외여행이나 다니며 노후를 보내지 뭐하러 학교는 세워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황 교장은 노후에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큰 후회는 없다.

황 교장이 학교 설립을 결심한 것은 지난 94년 기획감사담당관 시절이었다. 담양, 순천, 보성의 일선학교 중 샘플을 선정해 ‘나의 꿈 나의 길’이라는 진로지도를 해보면서 학생들의 목표의식이 현저히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교사는 아니었지만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그는 공교육 현장에서 몸담으면서도 우리사회의 입시열병이 아이들의 꿈을 사라지게 하고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떠나지 않았다.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의 적성은 생각지도 않고 명문대만 고집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꿈을 키워주는 것이 어른들이 할 역할입니다. 중학교 3년 동안 아이들이 하나의 꿈을 가질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보람입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해 부모 품을 떨어져 나온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더욱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가 학교에 쏟는 정성은 졸업한 아이들이 보내오는 소식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아이들이 간간히 보내오는 편지는 아빠, 아버지로 시작하는 말 첫머리에서부터 건강을 염려하는 안부까지 사제지간을 넘어서는 혈육의 정마저 느껴진다.

주로 재학시절 하기 싫어했던 일주일 시간표 짜기, 인사습관, 봉사활동 등이 상급학교에 진학해 큰 도움이 됐다는 감사의 내용이 많다. 일반적 의미의 대안학교와 달리 철저한 규율과 보수적인 학풍으로 아이들의 기초를 다잡으려는 것에 대한 반발심이 졸업 후 이해가 된 것이다. 황 교장은 이를 “교육 본질을 추구한 결과”라고 표현했다.

그는 “획일화된 공교육을 쇄신하기 위해서라도 벤처기업과 같은 다양한 학교가 많이 생겨야 한다”며 “교육도 수요자가 골라서 선택하는 ‘맞춤형’ 시대가 와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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