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보듬고 동고동락 “우리같은 마을 어디 봤소”
흙 보듬고 동고동락 “우리같은 마을 어디 봤소”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2.28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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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희망이다]⑦꽃보다 아름다운 얼굴 '화순 도장골 사람들'

▲ 김범순 도장리 마을 이장 등이 주민들이 설 명절을 맞아 마을회관에 내 걸린 동네 주민들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이 세 번째 전시회였다.
명절맞아 사진전·마을 축제 열어 출향인들과 ‘대동한마당’ 몸짓

하얗다 못해 백발이 돼 버린 머리카락. 양 볼에 깊게 패인 할머니의 주름살이 세월의 깊이를 말해준다. 눈물처럼, 그래서 더욱 곱다. 누런 가을 들판을 무대로 활짝 웃는 농부, 새끼 꼬는 모습, 자전거 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21일 설 명절의 후끈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마을회관에서 마주한 사진들이었다.

“주민 전체가 모여 설날 합동세배를 드리기 시작한지 이십 오륙년 됐을 겁니다. 그때는 마을회관이라야 손 바닥만한 곳이었죠. 손님들 오면 부인들 번번이 상 내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 보자고시작한 것이었는데, 어느 덧 마을의 연례행사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마을에서는 제일 젊은 축에 속하는 김성인(50)씨의 설명이다. 그는 서울에서의 꿈 많은 대학시절을 접고 80년 광주학살 직후 귀향해 여태 농사와 씨름해 온 터다. 

명절에 즈음해 사진을 걸어보자고 한 것은 지내해 부터다. 설날 모여 그냥 세배만 드리기에는 밋밋하다며, 재미삼아 옛날 사진들이나 걸어보자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 농사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사진이라고 뭐 변변한 것이 있을까. 낡은 사진첩을 뒤지고, 먼지가 자욱한 천장 맡 액자속의 사진을 뜯어냈다.

보릿고개 청년시절, 패기만만하던 군대시절, 신랑 얼굴도 모른 채 스물 살도 못돼 올린 결혼식 사진, 수해 뒤 하천 제방공사에 나선 마을 울력, 새마을 운동이 한 장이던 시절의 사진, 초상날 동네 상여 나가던 사진, 한 여름 냇가 물장난이 한창이던 아이들 모습, 한 여름 피서삼아 동네사람들과 추렴에 나섰던 흑백사진이 전부였다.

“인기 폭발이었죠. 학교에 가서 스캔을 뜬 뒤, 마을 회관 벽에 흰 종이에 그냥 다닥다닥 붙여 놓은 게 전부였는데, 여기서 저기서 난리였죠. 그렇게 좋아들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 마을 축제는 말 그대로 동네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다.
설날 마을회관에서 개최된 ‘도장골 사람들의 삶과 꿈’ 사진전은 이렇게 그 화려한 첫 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도장골은 전형적인 산촌이다. 남서쪽으로는 장흥, 영암, 나주와 경계를 이루는 높은 산들이 연이어 있고, 마을을 얼마 더 지나면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운주사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정천(淨川)은, 글자 그대로 맑은 천이다.

산골인데다 농토가 적은 편이어서 주민들의 지나 온 어깨엔 저마다의 고단함을 간직하고 있다. “농토가 부족하다 보니 자연히 밭농사가 많았죠. 예전엔 목화와 가마니로 유명한 곳입니다. 인근에서는 도장골로 딸 시집보내면 다들 고생시킨다고 마다고 했지요. 한때는 도암에서 목화가 나가지 않으면 남평장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지요. 길쌈을 짓느라 그만큼 고생들 하고 살았었죠”

할머니들과 아낙들에게 전해오던 이 마을 구전민요 밭 노래는 현재 농우회 회원들에 의해 70여곡이 채보된 상태로, 이 지역의 중요한 문화적 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2년 제20회 남도문화제에서 화순군 대표로 나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농민조직 ‘농우회’ 20년 역사...새 희망도 ‘모락모락’


골 깊은 산세 때문인지 마을 출신 중에는 유독 의기가 충천한 사람이 많았다. 구한말 동학의병이 어느 곳보다 활발했던 동네 중의 한 곳이며, 독립유공자만도 2명이 배출되기도 했다. 한편 고단한 삶 속에서도 주민들은 주위를 살필 줄 알았다.

“도장리는 진주 김씨와 진주 형씨, 두 성씨 일가가 대부분입니다. 6.25때는 군경에 의한 집단학살로 주민 30여명이 희생을 입기도 했는데, 그 혼란한 틈에서도 우리 동네 자체적으로는 단 한 건의 피해를 입은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마을의 중요한 기풍이 된 셈이지요.”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변화무쌍한 요즘 시대에, 20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합동세배가 이어져 온 데는 바로 이런 내력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 흐름의 한 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도장리 농우회’다. 사실 지난해 처음 사진전을 구상해 낸 것도 이들 농우회 회원들이었다. 농우회는 화순에서 최초 결성된 일종의 자생적 농민단체로, 농민회가 활성화되기 훨씬 이전부터 농민 권리 찾기, 마을 문화 가꾸기 등에 앞장서 왔다.

한때 120호에 이르던 마을도 어느새 60여호 남짓으로 줄었지만, 85년 결성된 도장리 농우회는 현재까지도 매월 한 차례 모임을 갖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등 명맥과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개최한 사진전도 나름의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전이 기대 이상의 폭발적 인기를 누린데 힘입어, 지난 추석에는 두 번째 사진전(‘여럿이 함께 가꾸는 희망’)과 함께 마을 축제까지 열었다. 사진전 무대는 이미 기계 소리가 멈춰 곧 사라질 운명에 있는 방앗간이었고, 마을축제의 소재는 어릴 적 추억이 묻어있는 ‘생활사’였다. 역시 대박이었다.

▲ 도장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 추석 명절 마을 축제 때 민속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 사진전을 한다고 할 때 얼마나 호응이 있을까 내심 의구심도 가졌죠. 그런데 자신도 잊고 지냈다 싶은 사진들을 보고는 그렇게 좋아 하더군요. 방송국에서도 찾아오고, 객지에 있어 명절 때 못 왔지만 텔레비전에서 보고 기분이 좋았다고 연락 오고, 한 동안 난리였습니다”

도장리 김범순(70) 이장님의 말씀이다. 도장리는 최근 단층이었던 마을회관을 회의실과 숙식이 가능한 방 3개가 딸린 최신 시설을 구비한 2층 건물로 증축공사를 완료했다. 화순군과 농협의 지원도 큰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힘을 보탠 사람들은 고향을 떠난 출향민들이었다.

가구당 10만원씩을 갹출한 주민들은 연초에 100여명의 출향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회관 증축에 관한 사연과 마을에 대한 구상이었다. 그 결과 설날 합동세배 자리에서만 1천만원이 넘는 성금이 답지한 것이다.

도장리는 마을회관 증축과 더불어, 마을의 미래상을 담는 새로운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반경 4~5㎞ 내에 산재한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을 활용한 농촌 체험 공간으로 가꿔 보는 곳이다.

운주사, 쌍봉사, 나주 다시 불회사, 조광조 선생 유적, 고인돌 공원, 도곡온천, 나주호가 반경 몇 ㎞안에 있는 관광·역사·휴양자원의 집적지라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이다. 아울러 마을 앞 정천, 구전 민요 등도 다양한 문화 체험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깔끔하게 단장된 마을회관은 각종 수련공간이나 도시민들의 가족 휴양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반가운 징조로 지난해엔 삼성생명 무등지점과 1사 1촌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고, 광주 양림교회에서는 40~50여명의 가족들이 수련회 공간으로 이용하겠다고 알려왔다.

“농촌의 어려움을 농민들 힘으로만 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회지에 나가있는 출향민들의 마음을 이끌어 내고, 도농 교류를 통해 출구를 찾는다면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을 청사진을 마련 중인 주민들의 힘찬 다짐이기도 하다.

“동네에 새로운 희망 만들어야죠”
[인터뷰] 김성인 전 화순군 의원


   
 
  ▲ 김성인 전 화순군 의원  
 
“사실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도 도시로 나가 예전만큼의 힘은 없어졌지만 남은 사람들이라도 새로운 소득원을 마련하고 희망을 만들어가야죠.”

격정의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농촌에 투신해 고향 땅을 일궈 온 김성인씨의 고백이다. 마을축제와 도장리 사진전을 주도한 김씨는 농민회 활동에 이어, 지난 의회에서 화순군 의원으로 당선돼 활동하기도 했다.

김씨는 요즘 지역을 대표할 마땅한 특산품이 없다는 것에 대해 신경이 곤두 서 있다. 과거처럼 길쌈이나 가마니를 내세울수도 없고, 마을의 절반 이상이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판로 문제가 역시 걸림돌이라는 것.

김씨는 이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교류를 통해 소득창출이 가능한 가공식품 개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예로 쌀로 내는 소득보다 떡이나 쌀 가공식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겠느냐는 것.

농촌 체험 프로그램도 그런 일환의 하나이다. 최근에는 농촌 회생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임실 느티마을과 담양 시목마을을 다녀 보며 경험담을 전수받기도 했다.

주민 사진전이나 마을축제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고를 가진 출향인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애향심을 갖도록 하는 한편, 주민 스스로도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촌회생의 방법에는 공동체로 다져진 도회지 출향인들의 몫도 적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2층 회의실에는 열 댓명 되는 동네 초중학생들의 공부방으로 꾸밀 생각입니다. 올해 축제에는 출향인들의 사진전도 계획해 볼 생각입니다. 동네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야죠.” 도장골의 여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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