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마을 100년 청사진 그려요"
"행복마을 100년 청사진 그려요"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2.22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동체가 희망이다]⑥담양 대덕 '운산마을'

오지 산간농촌을 녹색체험마을로

“아랫사람을 부림에는 법도가 있어야 하고, 가난해도 청렴과 절개를 지켜야 하며, 부유해도 예로서 사양함을 좋아해야 하고, 남의 물건을 탐내서는 안 되며, 능히 부지런하고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운산리 저심마을 향약 제1조 덕업상권(德業相勸) 중)

담양군 대덕면 운산리. 광주와는 불과 36㎞ 거리에 불과한 근교지역이면서도 담양에서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로 불렸던 곳이다. 동네 뒤쪽으로 해발 612m의 수양산과 만덕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안고 있다.

동복댐 상류 지역이면서 화순 북면, 곡성 옥과와 경계를 이루고 있어, 행정구역상 담양군이지 생활권역은 딱히 어디라 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동네 주민들의 얘기다. 그중에서도 표고 320m 운산리 저심마을은 90°에 가까운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이 마을 어귀를 감싸고 있어 그야말로 산 속에 숨어 있는 마을이나 다름없다.

“담양에서도 변방 중의 변방이죠. 광주와 오히려 가깝다보니 소속감도 떨어지고, 군 행정도 사실 관심이 덜 미치는 곳이었지요. 오죽했으면 1년에 딱 두 번 담양군민이 된다고 말했겠습니까. 한번은 가을 나락 추곡 수매 할 때고, 한번은 투표할 때를 이른 말입니다.”

▲ 운산리 마을 주민들이 마을앞 공터에 나와 농협 이동매장을 통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있다. 산간 벽지 모습의 한 모습이다.
서울 생활을 접고 7년 전 귀농한 오봉록(45)씨의 얘기다. 지난 2년여 동안 마을 이장을 거쳐, 현재 행복마을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서울에서 ‘되살이’라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마음으로는 늘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처음 고향에 돌아와 보니 60대 이하 세대주는 단 2가구, 평균 연령도 70세에 가까웠다. 한때 300여명에 이르던 주민 수는 고작 68명에 불과했다. 쇠락한 농촌의 현실이 정작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담양읍에서 38㎞ 떨어져 있다 보니 장을 보더라도 세 곳을 이용하곤 했다. 화순 이서, 담양 창평, 곡성 옥과장이 그것이다. 우스갯말로 담양 한번 못가보고 죽은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주민들의 소외감과 좌절감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일찍이 특화작목인 감을 중심으로 친환경농업에 주력해 온 대덕 시목마을은 더 없이 소중한 모델이었다. 특히 소득창출은 물론 농촌 공동체의 새로운 원형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은 새로운 활력이자 자극제였다. 그때부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한편으로 젊은 도회지 사람들을 마을로 불러 들였다. 귀농을 권한 것이다.

운산리는 전형적인 산촌이다. 표고차로 근 거리인 광주와는 아침 기온이 5~6℃ 차이가 날 만큼 일교차가 심한 지역이다. 작물 재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다. 그 만큼 영양이 많고 작물이 튼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물 빠짐이 좋기 때문에 콩 재배에 알맞은 토양이었다.

▲ 우리콩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는 한 발효실에서 오봉록(왼쪽),윤영민씨가 메주를 살펴보고있다.
“어디에 내 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알이 좋고 향이 있죠. 특히 일교차가 심해 병충해 걱정도 별로 없습니다. 같은 전남이라고 해도 남쪽지역으로 내려가면 노린재 병 때문에 농약 않고는 콩 못 해먹는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콩에 농약 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죠. 콩 농사에는 딱 좋은 곳입니다.”

친환경 콩을 이용한 메주, 된장, 간장 등의 제품 생산을 목적으로 한 ‘우리콩 영농조합법인’(대표 한성국)은 2005년 1월 출범됐다. 일종의 생산자 공동체이다. 갈전리에 위치한 한 발효실에는 콩으로 농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자 하는 그들의 꿈이 영글어 가고 있다. 5,000여개의 메주에도 나름의 정성이 스며있다.  

“볏짚에는 바실리스 균이 있는데, 메주를 발효시키는 데는 아주 주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약을 많이 쓰다보니 친환경 볏짚이 아니면, 깔아도 그 균이 제대로 나오질 않아요.” 소금 하나에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오봉록씨의 설명이다.

지난해에는 농가에서 12㏊ 면적에서 40㎏들이 250여 가마를 생산해, 이중 140여 가마를 영농법인에서 사 들였다. 시중가 보다 1,400원이나 높은 가격이었다. 올해는 면적을 더욱 확대해 매입량을 250여 가마로 늘릴 구상이다.

천혜의 자연조건을 하나의 ‘자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폐교, 맑은 하천, 친환경 농업, 농촌 문화 등을 이용한 각종 도농 교류 체험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용산골 자연학교’는 올해 6회째를 이어오고 있고, 광주 한살림, 생협연대 등의 소비자단체들과는 ‘콩타작 체험’, ‘메주만들기’, ‘장 담그기’, ‘도예체험’, ‘자연앓이(단식)학교’ 종 체험 행사 등을 통해 신뢰를 다졌다. 지난 해에는 KT노조 전남지방본부와 1농 1노 자매결연, 200여평의 체험농장을 시범 운영하기도 했다.

▲ 지난 1월 '놀자,놀자.신나게 노~올자'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제6회 용산골자연학교'프로그램 중 도회지에서 참석한 아이들이 저녁 불놀이를 하며 농촌 문화를 만끽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은 오지의 작은 농촌마을에 온기와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올해 새로 마을 이장으로 선출된 윤영민(45)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 광주전남지역본부장으로 노동현장에서 땀 흘리던 도시 근로자였다. 윤 이장 외에도 운산리와 인근 갈전리 등에 10여 가족이 새로 둥지를 틀었다. 어림잡아 40여명의 주민이 새로 생긴 셈.

저심 마을만 해도 이제 40대가 12명에 이르게 됐다. 평균 연령도 49세로 줄어들었다. 마을이 젊어진 것이다. 등학생도 7~8명에 이르고 유치원생까지 생기게 됐으니, 이제 시골에서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말은 이 마을에서만은 예외가 됐다.

향약 제정, 작은 일도 함께 나눠 

지난해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함께 모여 두레의 정신을 이어 운산리 마을 향약을 새로 제정했다.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德業相勸), 잘못은 서로 고쳐 준다(過失相規), 예에 맞는 풍속은 서로 교환한다(禮俗相交), 환난을 당하면 서로 도와준다(患難相恤)는 4대 덕목에 이어,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생명존중(生命尊重)을 하나 더 보탰다. 

“이장 일이 대통령과 맞먹는 일입니다. 일을 안 하려고 하면 할일이 없고,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이장 일이죠. 아마 13개 부처 모든 사안과 통해야 하는 일은 이장 일 밖에 없을 겁니다.”

윤 이장도 올해 이장 일에 전념하기 위해 농사를 조금 줄이기로 했다. 오는 22일에는 총회를 열어 마을 세부 운영규정을 정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한말 고광순 의병장이 처음 출병 모의를 했던 본영 터와 판소리 적벽가 한승호 명창의 태생지를 살리는 역사 문화 테마벨트도 구상 중이다.

주민들의 의욕도 어느 때보다 활기차다. 친환경농사로 전환하기 위해 올해는 벼 작목견학을 다녀오고, 이미 녹색농촌체험마을 추진을 위해 광주전남지역혁신연구회가 주관하는 리더십 양성교육을 6명의 주민들이 함께 수강하기도 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녹색농촌체험마을 추진을 위해 100년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농촌이 어렵지만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비전을 마련해 보려 하죠. 주민들도 이제 못할 것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그동안 교류를 가져온 광주 소비자 운동단체 등을 초청해 정월 대보름 행사를 기획 중인 윤 이장은 “길놀이를 주민들이 스스로 해 보겠다고 나섰다”며 “대보름 잔치가 더 없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농촌은 더 없는 산 교육장”
[인터뷰]오봉록 담양 대덕면 운산리 행복마을 추진위원장

   
 
  ▲ 오봉록 담양 운산리 행복마을 추진위원장  
 
“많은 사람들이 귀농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막상 고향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죠. 농사를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있거든요. 체면 때문이기도 하죠. 부모들은 그래도 명절 때 자식들이 양복입고 승용차라도 끌고 올 때나 목에 힘주고 사는데, 그런 기대욕구를 채워줄 수는 없는 거죠”

오봉록 운산리 행복마을 추진위원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97년 서울생활을 청산한 그는 본격적인 귀농에 앞서 순천, 고흥, 순창 지역 등에서 3년여 농촌 체험 기간을 가졌다. 앞으로의 할일을 정리해가며 나름의 귀농 준비를 한 셈이었다.

“귀농을 생각할 때 교육문제와 문화시설을 가장 우려하는데, 사실 1년에 영화나 연극 몇 편이나 볼까요? 사실은 문화적 시설이 문제가 아니라 여유의 문제거든요. 농촌에 살지만 같이 어울려 개봉영화 제일 먼저 보러 다니고, 유명한 영화 마을회관에 모여 할머니들과 다 같이 보고 오히려 더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오 위원장은 귀농이후 결혼도 하고 새 가정도 꾸렸다. 오 위원장은 “교육문제도 사실은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남을 이길 것이냐의 문제 아니냐”며 “기준을 달리하면 문제는 달라진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웃과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농촌은 더 없는 산 교육장이다”고 말했다.

다만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도피하듯이 귀농하거나, 인위적으로 막연하게 마을 공동체를 꿈꾸는 것도 삼갔다.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무엇보다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