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 내리는 비
남쪽에 내리는 비
  • 시민의소리
  • 승인 2007.02.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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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와그림]임동확


아 눈부셔, 눈부셔라
눈물이 스스로를 다스리듯
제 힘으로 길을 내며 자유로운
이 거리의 빗물은 아름다워라
이리 오셔요 저리 가요
그 끝모를 소환에 맘 사리며
큰 슬픔의 덤으론 가지를 흔들고
절름발이 기쁨으론 속잎을 적시는 비
한낱 꿈이라도 깨어나
오래 아픈 기억을 씻으며
천년에 천년을 흐느끼는 그대여
누가 남아 견디어가랴
흠집 풍성한 미망을 잠재우고
모두가 온전한 모습을 수줍어할 그 날까지
칭칭 감겨오는 햇살에 키만 웃자란
가지마다 흰 비둘기떼를 날리며.
그러나 이곳에서는 증오도 삶인 것을
모든 것 다 내주고
제 울음 하나 낮게 뿌리며
세상 뒷켠, 가문비나무에 숨은 새여
이제 조금은 사납게 노래해다오
결코 사랑엔 함정이 없다고
여전히 저 너머엔 평화가 있다고

▲ 조진호 작 '남도의 봄'

[시작노트]

5월 학살을 겪은 우리는 한때 무한의 증오와 적개심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우린 진정한 평화와 사랑을 꿈꾸기도 했는데, 또한 그 불가능성에 절망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거나 깊은 슬픔에 젖기도 했다. 광주의 다른 명칭이기도 했던 '남쪽'에 내리는 비는, 그래서 우선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눈물이나 깊은 슬픔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 비는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좌절을 딛고 제 스스로 길을 내며 일어서기 위한 다짐과 소생의 상징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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