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논두렁 밭두렁 뛰어다니고”
“자전거 타고, 논두렁 밭두렁 뛰어다니고”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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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희망이다]③아름다운 '작은학교' 지산초 북분교

폐교 위기, 학부모 손 맞잡고 되살려... 농촌 작은 학교의 숨은 가치 구현

한 겨울 운동장이 휑할 것이라는 예견은 빗나갔다. 겨울방학이 한창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장 한 켠이 아이들 웃음소리로 왁자지끌하다. 교문 입구부터 울창한 소나무 숲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지산초등학교 분 분교. 행정구역상으로 북구 효령동에 위치해 있다. 광주시에서는 유일한 분교이기도 하다.

1935년 개교한 이래 지금까지 졸업생수는 2,584명. 인근 수곡, 태령동 등 9개 마을이 이 학교의 학군이다. 한때 전교생이 600여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지만 시대의 변화물결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보니 이농현상과 함께 자연스레 학생수가 줄기 시작했다. 2000년 들어서면서부터 끊임없이 통폐합 얘기가 오르내렸다. 학생수는 급기야 20명대까지 줄었다.

▲ 체험학습장. 효령생태문화교육공동체와 작은학교를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이 주관했다.

농촌학교는 도시와는 또 달리 의미를 지닌 곳이다. 지역민들이 나고 자란 아련한 추억이 서린 곳이자, 지역 공동체에 있어서도 나름의 구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학부모들이 용기를 모았다. 폐교를 막아보자는 것.

방법은 학생을 늘리는 것 밖에 없었다. 2004년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그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교설명회를 열었다. 뜻밖의 화답이 있었다. 광주 도심의 몇 몇 아이들이 이 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 것.

이어 ‘아름다운 작은 학교를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고, 2005년 벽두부터 다시 학교 설명회를 개최했다. 다른 지역의 학생유치 성공사례를 발표하며 서로 의지를 북돋았다.

‘작은 학교’에 대한 반응은 의외였다. 소문을 타면서 전학생도 늘고 신입생까지 새로 생겼다.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확인되면서, 교육청도 더 이상 폐교 얘기를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남다른 뜻이 모인만큼 그 학사내용도 사뭇 달랐다. 농촌 속 ‘작은 학교’만의 매력을 십분 살려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도심 속 짜여진 생활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연과 호흡하는 것. 푸른 자연, 넓은 운동장, 담 너머 농촌 들녘과 두엄 냄새 등이 교육공간이고 소재였다.

불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방과 후 학교가 그런 경우다. 학생수가 몇 안 되다 보니 그에 맞는 교사를 맞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길이 보였다. 학부모들이 분담해 자원봉사로 운영 하는 것. 생각주머니, 텃밭, 어린이 요가, 음악줄넘기, 요리, 풍물 등 프로그램 어느 것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2005년 시민단체, 문화단체 등과 연대한 체험학습 기회는 학교 살리기 운동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장이었다. ‘학교 숲 체험’(1.2년), ‘벽화그리기’(3.4년), ‘미디어 꼬망동네’(5.6년), ‘학교와 마을축제’(10월) 등 다른 학교에서는 꿈꿔 보지 못할 알찬 체험 행사를 스스로 기획하고 꾸며가지도 했다.

마을 고샅을 훑고 다니고,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로부터 옛날 얘기를 듣고, 교정 곳곳을 무대삼아 그림을 전시하기도 했다. 5월 무렵 1박 2일로 열리는 ‘아름다운 숲속 작은학교 캠프’는 선생님, 아이들, 학부모가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와 체험, 이야기 마당이다.

지난 12월부터는 ‘노~올자. 작은학교, 마실가자 효령마을’이라는 주제로 겨울방학을 이용한 생태문화체험학습을 진행 중이다. 이 체험에는 북분교 학생뿐 아니라 타지 학생들까지 약 35명이 참여해 모처럼 흐뭇한 시간들을 보냈다.

▲ 참가한 학생들이 거친 길을 마다하고 담양 습지를 탐사에 나서고 있다

마음껏 놀고, 체험하고, 나누고...“자연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아요” .

광산구에 사는 이옥순(42.월곡2동)씨는 1학년과 3학년 두 아들을 이곳까지 통학시키고 있다. 설명회를 듣고 학교를 둘러보러 왔는데, 아이들도 흔쾌하게 동의하더라고. 광산구에서만 차량을 이용해 여덟 명의 학생이 먼 거리를 마다하고 이 학교를 통학하고 있다.

“아파트 14층에서 학교를 내려다보면 학생들을 가둬두는 합숙소나 교도소 같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동안 아파트 벽만 보고 살았는데 애들도 너무 좋아합니다.”

2학년 딸 선우의 아토피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학부모 박미정(47.일곡동)씨는 “적어도 학교 앞에 슈퍼마켓이나 문방구가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며 “친구들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야 할지 늘 부담이었는데 이것이라도 고민이 없어졌다”고 흐뭇해했다.

전교생이라야 이제 겨우 33명. 아직은 시험이고 과도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올해 1학년 신입생만 8명이 될 것으로 예상돼, 전교생도 40여명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학부모 정미경(42. 효령동)씨는 “시골이 좋아 이곳에 살면서도 한 때 폐교 얘기가 나올 때는 교육문제 때문에 전학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더라”며 “학생 수가 늘고 학교도 남아있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 지난달 12월부터 주말을 이용해 4주 연속 개최된 ‘생태문화 체험학습’ 현장. 학생들이 마을 어르신들의 안내에 따라 짚풀로 새끼를 꽈 보고있다.

하지만 부모들의 생각이 꼭 아이들과 일치할 수는 없는 법. ‘친구들도 많지 않고 학교도 작지 않느냐’고 은근히 학생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우리는 학교 폭력 같은 것은 없어요. 동생들 친구들, 엄마들까지 다 잘 아는데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 김동비(13.6년) 학생의 답이었다. 승헌(8.1년)이는 “숙제가 없어 마음껏 놀 수 있다”며 “급식한다고 오래 줄 서 있을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자랑이다.

“도시 아이들이 사회성이 많을 것 같죠?. 천만에요. 사실 도시 아이들은 수업 끝나면 학원가기 바쁘고, 서로 경쟁이 심하다 보니 오히려 같이 놀 친구가 없어요. 여기서는 형, 누나들, 친구의 동생 이름까지 전 교생을 다 잘죠. 애들끼리 규칙을 만들어내고 가지가지 노는 방법을 만들어 내곤 해요”

학부모 박미정씨는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학습”이라고 자랑이다. “처음 아파트 안에 있는 학교를 두고 애를 통학시키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미쳤냐’고 하더군요.

우리 애가 그때만 해도 한글을 잘 못 썼는데, 이제 훨씬 자신감이 생겼어요. 한 반에 40명 정도 되면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특별히 잘 해야 이름 한번 불러주는 건데, 여기는 서로 마주보고 공부할 수 있거든요.”

‘경쟁 사회에 불안감은 없느냐’는 질문에 이옥순씨는 “부모들이 불안 해 하면 불안해했지 아이들은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먼지도 묻히고, 논두렁 밭두렁도 뛰어 다닐 수 있어야지요. 몇 마디 말보다 자연에서 배우는 게 훨씬 많아요.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다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원거리 통학의 수고를 자처한 이들의 자신에 찬 목소리다.
 
"지역민들이 먼저 힘을 보탰죠"
[인터뷰] 이채연 지산초 북분교 학교운영위원

   
 
▲ 이채연 지산초 북분교 학교운영위원
 
“해마다 봄이 되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통폐합 설문지를 돌리고 있을 때가 가장 괴로웠습니다. 전임 자문회장도 이곳에 살면서 도시로 전학 보내는 실정이었으니, 학교 분위기도 말이 아니었죠.” 이 학교가 모교이자, 학부모이기도 한 이채연(43) 학교운영위원의 설명이다.

교육부는 소규모학교 통폐합 방침에 따라 100명 미만의 학교에 대해서는 폐교한다는 구상이었다. 학교는 지역 공동체 형성에 한 구심이었다. 해마다 추석 때가 되면 여지없이 학교에 모여 윷놀이와 운동회 등이 벌어지곤 했다.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교육장 면담을 갔습니다. 더 이상 통폐합 공문 좀 보내지 말아달라며 3년만 유예기간을 달라고 했죠. 마을 어르신들도 학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힘을 보태겠다고 했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학교운영위원장으로 있던 2001년 무렵이다.
먼저 달라진 것은 동네 분위기다. 학교가 남은 데다, 고사리 같은 손주들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갑자기 마을에 생기가 돌게 된 것이다.

“이농현상과 핵가족화를 피할 수 있는 시대에, 마을과 학교가 함께 살아나가는 방법입니다” 지산초 북분교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이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까.

카페 ‘아름다운 작은학교’ http://cafe.naver.com/2005school.cafe
으뜸바라지 017-603-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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