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나서서 농촌 살리는 '생명운동'
소비자가 나서서 농촌 살리는 '생명운동'
  • 이국언 기자
  • 승인 2007.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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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희망이다] ②‘빛고을 생협’

"주부들이 움직이면 생활의 기준이 바뀐다"
굴곡 딛고 900명 조합원으로 성장
"자연과 이웃 더불어 사는 즐거움"


▲ 2006 - 풍년기원 한마당 행사중 단체사진

돌아보면 엊그제 같다. 안전한 먹거리를 통해 가족의 건강과 함께 개방농정에 내 몰리고 있는 농촌도 살려보자고 젊은 주부들이 뜻을 모은 것이 지난 1994년이었다. 광주시 광산구 하남 한마음 생활협동조합이 창립되면서부터다.

생협은 주부들이 중심이 된 소비자 운동이면서도, 더불어 지역 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해 갈 수 있는 좋은 모델이었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생명운동이자, 생활운동인 셈이었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과정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매장을 운영하게 된 것이 되레 발목을 잡는 꼴이었다. 초기에는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직거래 활동이 중심이었는데, 품목에 따라 수급이 원활치 못했다.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도 한 요인이었다. 매장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만큼 소비층이 두텁지 못했던 것. 상대적으로 가격도 높은데다 매장까지 운영하니 자연히 경쟁력이 생길 수 없었던 것이다.

신선미(49) 빛고을 서구생협 이사장은 "그 때만 해도 주부가 선뜻 딸기 하나 사서 가족 먹이기도 힘들었다"고 말한다. 회원은 350여명 남짓이었지만 실제 이용자는 불과 250여명에 불과했다.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멀리 하남까지 찾아야 하는 불편도 문제였다.

6년여를 이어오는 동안 마음고생만 심했다.
"계속된 적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가 됐지요. 접을 것인가 말 것인가 존폐의 기로에 내 몰렸는데, 그냥 접고 흩어지기에는 너무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좌절을 딛고 다시 무릎을 맞대자고 나선 건 이희한(45)씨 등 3명. 현재 빛고을 생협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영순 빛고을 시민생협 이사장도 그때 멤버중의 한 사람이다.

계기가 된 건 전국적으로 '한국생협연합회'가 출범한 것이다. 전국에서 활동하던 지역 생협들이 물류 통합 움직임을 갖기 시작했다. 운영난을 겪던 생협들이 서로 공동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출자금 90%를 감자하는 우여곡절 끝에 2001년 9월 '빛고을 생협'으로 새 둥지를 틀었다.

전국적인 물류센터가 마련되면서 물품 수급과 배송시간 등에서도 면모가 일신됐다. 취급품목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게 늘었다. 생협이라고 해서 잡곡이나 과일, 야채 정도나 취급할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물, 육류, 생선, 유제품, 간식거리, 세제류 심지어 화장품과 갖가지 생활용품까지, 들춰보면 어느 하나 빠진 게 없다.

▲ 빛고을 생협은 농촌과 상생하는 생명운동을 펼치면서 가을걷이, 고구마캐기, 딸기따기 등 생산지 견학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는 체험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지난 해 빛고을서구생협의 고구마캐기 체험에 참여한 회원들의 기념촬영 사진이다.

생협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초기 출자금 3만원과 월 2만원 정도의 조합비를 납부한다. 안전한 먹거리를 통해 삶을 바꿔나가는데 필요한 최소비용인 셈. 주문은 인터넷을 통해 3일전에 주문해야 한다. 산지 주문과 배송시간을 감안한 것이다.

'그래도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이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옥순(41) 빛고을 시민생협 운영위원장은 대뜸 "잘 모르시는 말씀"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 위원장은"저도 넉넉해서 생협을 이용하는 건 아니다"며 "오히려 계획적인 구매생활을 할 수 있다보니 낭비를 없앨 수 있다"고 말한다.

생협은 생산자와 계약 재배해 그날그날 주문량만큼 조달하기 때문에 재고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는 것. 그만큼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선미 서구 생협 이사장은 "이윤을 따로 안 붙이다 보니 대형할인점과 별 차이가 없고, 올해의 경우 귤, 배 값이 오히려 더 싸다"며 "특히 야채는 계절 진폭이 큰데, 생협은 1년 내내 거의 변동이 없다"고 말한다.

생협 이용도가 높은 건 무엇보다 신뢰성의 문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생산자가 공개되며, 물품에 대한 검수와 가격결정이 전적으로 회원들의 참여로 이뤄지기 때문. 배송도 생협 직원이 직접 하기 때문에 가격 이상의 신뢰성을 갖게 한다.

이들은 "공산품이나 구입하면 모를까 대형 할인마트 식품 코너를 찾을 일은 없다"고 말한다.

2001년 100여명으로 출발한 빛고을 생협은 회원이 꾸준히 늘면서 현재 3개 생협, 900여명의 회원에 이르렀다. 빛고을 생협에서 분화해 2004년 빛고을 서구 생협과 빛고을 시민 생협(광산구)이 새로 조합을 결성한 것이다.

조합원들은 아토피 피부병 등 관심 있는 분야에서 동아리활동을 하거나, 각종 공동체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고 있다. 가을걷이, 고구매 캐기, 딸기 따기 등 생산지 견학이나 각종 교류활동들은 아이들에게 더 없는 체험 학습장이 되기도 한다.

"신입조합원을 처음 만나면 화장을 곱게 하고 나오는데, 나중에는 맨 얼굴로 보죠. 다른 모임들은 아이들 데려가는 것이 신경이 쓰이지만, 생협은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죠" 신선미 이사장의 자랑이다.

▲ 빛고을 생협회원들이 한미FTA 반대운동을 하는 모습.
각별한 것은 생협이 대안 사회를 열어가는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 한미FTA로 농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건강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서도 농업, 농민의 생존이 생협이 표방하는 생명운동과도 직결된다는 것이다.

이옥순씨는 "농업을 지키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친환경 농업을 지키기 위한 소비자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밀 살리기운동이나, 광우병 쇠고기 불매운동, 한미 FTA 반대운동에 가장 앞장섰던 것도 이들이었다.

생활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활동도 활발하다. 아이들 과자 속에 감춰진 유해 식품첨가물을 고발해 지난해 제과업계가 스스로 유해 색소를 금지하겠다는 선언을 이끌어 내는가 하면, 친환경 학교급식 개선운동, 식품안전법 개정운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인근 회원들끼리는 월 1회 '마을 모임'이 이뤄진다. 빛고을 생협 8개, 시민생협 6개, 서구생협 5개 등 총 19개가 운영되고 있다. 조합운영에 대한 회원의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방향을 논의하기도 한다. 모여서 같이 음식을 나눠 먹거나 밥을 해 먹는 것도 즐거움중의 하나다. 일종의 '자치'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가정에만 갇혀 있다보면 기껏 연속극이나 연예인 얘기나 할 텐데 생협 조합원이 모이면 다릅니다. 주부가 바뀌면 기준도 달라집니다. 아이들을 특별한 학교에 보낼 것이 아니라 엄마의 활동을 보고 아이들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하는 것도 큰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신선미 이사장은 "생협 일을 하면서부터 세상 일에 눈을 뜨게 됐다"며 "생협에는 그런 보람과 인간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운동으로 확대해 가겠다"
[인터뷰] 이희한 빛고을 생협 이사

   
 
   ▲ 빛고을 생협 이희한 이사
 
"회원확대가 가장 큰 목표입니다. 실제 농업회생에 일조하고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가구수 대비 3% 정도 회원을 확보해야 하거든요.그래야 생산자에 대한 소득지지가 가능합니다."

이희한 빛고을 생협 이사는 "친환경 먹거리를 서민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가격대가 되기 위해서는 박리다매를 해야 한다"며 "그만큼 소비층이 두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아울러 "밥상부터 바꿔 나가야 한다"며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단체 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이 납품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학교급식과 남편 직장의 구내식당부터 바꿔가자는 것이다.

생산자회와는 유대관계를 더 강화해 가는 한편, 도농 교류는 물론 상대적으로 취약한 농촌 아이들의
교육문제 등에 대해서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편으로 지역 공동체를 위한 역할을 고민 중이다. 육아, 교육문제, 복지분야 등은 특히 주부들이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생협의 활동경험과 취지를 십분 살려, 지역사회에도 기여하면서도 사회적 일자리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란다.

이 이사는 "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생협의 역할을 찾아보고 있다"며 "이웃과 함께 하면 삶의 질과 함께 세상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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