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11.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주가밝아오니]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이인직은 『혈의 루』라는 언문일치의 신소설을 쓴 우리 근대문학의 개척자요 ‘원각사’라는 최초의 서양식 극장을 만든 한국 근대연극의 공로자이다.

“한국 최초의 신소설가로서 개화사상을 고취하고 갈등과 성격 묘사, 그리고 사실적 문장을 처음으로 구사하였다”고 우리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고 숱한 시험문제나 퀴즈문제에도 줄곧 이것이 정답으로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 실린 「혈의 루」라는 시를 보면 이런 상식의 이면이 드러난다. “〔…〕일찍이 이인직은 국비로 일본 가서 일본말 배워다가/ 일본군 통역으로 러일전쟁 종군한다/ 그 뒤 신문사 주필 되고 사장 되더니/ 마침내 이완용의 비서겸 통역이 되어 단돈 3천만 원으로/ 3천리 땅과 2천만 사람을 팔아넘기는 실무자가 된다/〔…〕그 뒤 비서 이인직은 작위 하나 못 받고/ 겨우 매일신보 객원 노릇 하다가 / 『혈의 루』남기고 죽어서/ 아오개 화장터에서 일본식으로 불태워진다/〔…〕 이가 곧 조선 신소설 선구자이렷다〔…〕”

사실 요즘은 웬만큼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인직의 이런 양면을 다 꿰뚫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학생들 가운데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강의 시간에 확인하고는 착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웬만한 양식을 가진 교사라면 당연히 이인직의 양면을 가르쳤을 것이라는 추측은 사실과 동떨어진 희망사항에 불과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왜 많은 교사들이 이인직의 친일과 매국행위에 눈을 감았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이인직 하면 곧 신소설의 개척자요 근대문학의 공로자라는 상식과 이완용의 비서요 매판지식인이라는 사실의 불일치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전통적으로 과를 덮어주고 공을 치켜세우는, 인지상정이라는 편리한 처세술에 기대게 된다.

최근에 나는 이른바 ‘백성학 미스터리’로 불리는 한 기업가의 미국에 대한 정보 제공설에 얽힌 이런저런 기사들을 읽으면서 역시 진실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되새김질 하였다. 세계의 모자시장을 석권한 성공신화의 주인공, 초등학교 3학년 수료의 학력으로 영안모자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일으켜 세우고 드디어 경인방송의 사실상의 주인으로 등장한 백성학씨.

그가 한국의 국내정세와 이에 대한 미국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정보보고서’를 오랫동안 정기적으로 미국 정부 요로에 제공했다는 경인방송 전 사장 신현덕씨의 폭로는 국회에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를 외면하고 보도하지 않았다.

주류언론들의 핑계는 신씨의 폭로가 경인 방송의 경영권을 둘러싼 영안모자와 기독교방송 사이의 다툼에서 비롯된 사안이라는 것이다. 다른 핑계는 현행법상 ‘적국’ 에 대한 정보 제공만이 간첩죄에 해당하고 미국 같은 우방에 대한 정보 제공은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들이다.

동기와 관계없이 핵심은 백씨가 미국에 조직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는가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산업 스파이의 경우에는 왜 정보제공처를 적국과 우방으로 가르지 않고 처벌하는가? 그렇다면 미국은 왜 우방인 한국에 정보를 제공한 로버트 김 씨를 형사처벌한 것일까?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진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결국은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