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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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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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밝아오니]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최근의 어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구당 한 달 통신비가 13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가계비 가운데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외식비보다 크다는 얘기다.

하기야 요즘엔 노인들이나 아이들도 누구나 핸드폰을 가지고 수시로 통화를 하는 판이니 통화요금이 10만원을 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을 위한 고속통신망 가입비나 유선방송(케이블 텔리비전) 또는 위성방송(스카이 라이프 텔리비전) 수신료까지 합치면 통신비용이 식료품비용(이른바 엥겔지수)보다 많은 집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나이가 적을수록 통신비가 많이 나가는 것이 요즘의 추세인 듯하다. 젊을수록 할 얘기가 많고 통화 횟수도 많은 모양이다. 내가 아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회사로 날아온 전화요금 청구서를 보고, 월급의 반 이상을 통신비로 낭비하면 어떡하느냐고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충고를 했다가 '남의 사생활에 웬 참견이냐'는 핀잔과 함께 그렇게 간섭하면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협박(?)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고 한다.

길거리나 교실에서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는 학생들, 기차나 버스,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어른들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렸다. 역이나 터미널, 시청, 동사무소 같은 공공건물에는 휴대폰 충전기가 설치돼 있으니 '모든 건물에 휴대폰 충전기 설치'가 대학 학생회의 요구사항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부친 위독'이나 '축 합격' 같은 전보에 울고 웃던 시절, 연애편지로 사랑을 고백하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한 편리하고 환상적인 이동통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도때도 없이 통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아도 가족과 친구, 노사, 여야,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대화나 소통이 전보다 잘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쓸데없이 주고받는 잡담으로 통화료가 올라가고 경제성장률과 국민총생산은 높아지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최근 정부에서 마련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설명회에서 협상 실무자인 한 경제관료가 "솔직히 말해 농업은 경쟁력 없는 산업 아닙니까? 우리나라의 농업은 곧 퇴출될 운명입니다"라고 윽박지르더라는 말을 듣고 IT 강국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새삼스럽게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지창 영남대 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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