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맑은 날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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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시와그림] - 나종영
맑은 날
-나종영

맑은 날이면 햇살을 맞으며 빨래를 하고 싶다
흰 광목천에 달디 단 바람이 일렁이고,
빨랫줄에 빨래를 툴툴 털어 널고
마당을 가로질러오는 흰 저고리의 어머니가 보인다

뒤란 호두나무가 보이는 대청마루에
어머니 다듬이질을 하고 이불홑청을 꿰맬 때면
어린 나는 부챗살처럼 펴진 쪽빛 이불에 누워
은빛 고래떼를 쫓는 어부를 꿈꾸곤 했다
까실한 홑청의 감촉이 몽환夢幻의 바다보다 따스했다

강 물결 쟁쟁거리는 맑은 날이면
자전거바퀴에 햇살을 싣고 징검다리를 건너 빨래터에 가고 싶다
환한 물살에 살랑살랑 빨래를 헹구는
어머니의 물빛 손목이 눈에 부시다.

▲ 조진호作 [실향]
[시작노트]
붉은 커튼을 드리우고 여름이 지나갔다.

지난여름은 폭우로 인한 산사태와 홍수로 온 국민이 큰 피해를 입었다.

또한 며칠씩 계속된 열대야 현상으로 사람들을 몹시 지치곤 했다. 이어 터진 사행성 성인오락게임 '바다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치의 무책임과 혼란, 정책의 부재가 국민들을 또 다시 도탄에 빠지게 하고 있다.

이 여름이 지나가는 것과 함께 지긋 지긋한 것들이 사라졌으면 싶다.
處暑를 넘어 흔들리는 나뭇잎사귀 사이로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이제 가을이다. 여름내 찌든 옷가지들을 말리고 옷매무새를 새롭게 할일이다.

징검다리가 있는 빨래터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던 풍경들이 그립고, 광주천 맑은 강물에 흰 광목천을 빨아 헹구고 강가에 말리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들이 새삼 그립다.

그런 맑고 좋은 날들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인가!

□나종영 (羅鍾榮)

1954년 광주출생
1981년 창작과비평사 13인 신작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작품 활동 시작
1985년 시집 『끝끝내 너는』(창작과비평사),
2001년 시집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문학사)
「시와 경제」,「 5월시」동인
광주·전남 작가회의 회장 역임, [문학들]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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