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와 그림]
소쇄원에서 詩琴을 타다
-고재종
소쇄소쇄, 대숲에 드는 소슬바람
무엇을 마구 씻는가 했더니
한 무리 오목눈이가 반짝반짝 날아오른다
소쇄소쇄, 서릿물 스치는 소리
무엇을 마구 씻는가 했더니
몇 마리 빙어들이 내장까지 환하다
자미에서 적송으로 낙엽 따라 침엽 따라
괴목에서 오동으로 다람쥐랑 동고비 따라
빛나는 바람과 맑은 달이
飛潛走伏을 다스리면
오늘은 상강, 저 진갈매빛 한천 길엔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기러기며와
소쇄소쇄, 씻고 씻기는 푸른 정신 뿐
나 본래 가진 게 없어 버릴 것도 없더니
나 여기 와서는 바람 들어 쇄락청청
나 여기 와서는 달빛 들어 휘영청청.
조선조 중중 때 학자 양산보라는, 한 불우한 사내가 있었나니. 천하를 논하던 스승 조광조의 낙마로, 그 큰 뜻 접고 낙향한 사내였던 바, 여기 소슬한 숲 속에 소쇄원이라는 우거를 짓고, 일평생 들어오고 나아감이 없었나니. 어쩌자고 문장 한 줄 남기지 않았나니. 그 분노의 문장 청대숲으로 치솟게 하고, 그 결곡한 문장 개울물 소리에 흘려주고, 그 슬픔의 노래 동박새 울음에 넘겨주고, 그 마음의 환희 자미꽃으로 일렁이게 하고, 다만 光風 과 霽月로 호사를 누렸나니, 아, 불우를 통해 불우를 이긴 瀟灑翁이여.
고재종 (高 在 鍾)
1957년 전남 담양 출생. |
저작권자 © 시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