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탄 기자들
버스에 탄 기자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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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김옥렬 전남대 언론홍보연구소 연구원
'버스에 탄 기자들'(The boys on the bus)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선거보도에 관한 기념비적 연구서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은 티모시 크라우스(Timothy Crous)라는 기자가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에 후보자 캠페인 버스에 함께 타고 다녔던 기자들의 취재보도 행태를 분석해 낸 것으로 유명하다. 티모시는 실제로 1972년 미국 대선 기간 중,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도청 대상이었던 민주당 조지 맥거번 후보를 동행 취재한 기자다.

티모시의 논리는 간단하다. 유세 관련 기사 등 선거 운동이나 진행상황을 보도하는 기자들의 기사가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이고 집단적인 사고에 빠져 비슷한 류의 기사, 자기가 쫓아다니는 후보자 입장을 부각시키는 기사만 쏟아내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팩 저널리즘(pack journalism)'이라 부르는데, 우리 말로 하면 '떼거리 보도행태'정도가 되겠다.

다른 기자들과 같이 쓰는 것이 '안전'

'버스에 탄 기자들'이라는 책 제목도 특정 후보의 전국 캠페인 동행취재 버스에 기자들이 함께 타고 다니면서 비슷한 생각으로 엇비슷한 기사만 써대는 한심한 상황을 빗댄 것이다. 한 버스에 함께 타고 숙식을 함께하며 돌아다니니, 혼자 내려 엉뚱하고(?) 눈에 띠는 기사를 쓸 수 없음은 당연하다. 티모시는 책에서 “기자회견에서 혼자 후보자에게 불쾌한 질문을 던져 '트러블 메이커'가 되면 기자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내용이 어떻든지 다른 기자들이 쓰는 것이면 좇아서 같이 쓰는 것이 훨씬 편하고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무려 30여년전 미국 기자들의 행태를 꼬집은 이야기들이지만, 지금 우리 실정에 갖다 놔도 시공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틀리지 않다. 출입기자들은 매일 얼굴보고 가끔 술밥 사고 '챙겨'주는 단체장의 입장만 되풀이하거나, 출입처 의견을 지지하는 기사쓰기가 횡행하는 게 우리 형편이다. 누구도 버스에서 내려 혼자만의 시각으로 취재보도를 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려 하지 않고 같은 이야기만 해댄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매일 기자실에서 얼굴 보고 있자니 그럴만도 하다.

비슷한 보도 지양하고 깊이있는 취재를

마침 선거철이어서 티모시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지역 신문들도 연일 어느 지역엔 어떤 분들이 나오고, 어느 분은 출판기념회를 갖는다고, 어떤 분은 뭐라 말씀하셨다고 연일 선거보도가 쏟아진다.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 더욱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들은 그저 그런 식의 비슷한 보도 뿐이다. 아무래도 얼굴 자주보는 현직 단체장의 입장을 반영하는 기사가 많고, 그들에게 유리한 내용이 한 건이라도 더 올라온다.

신문마다 내용도 비슷하다. 유력후보 이야기엔 반론을 제기하는 곳이 없다. 어느 시군엔 어떤 분이 나온다는 기사내용 형식도 이 신문 저 신문 틀리지 않다. 선거 시작되면 '접전' '열전'이라며 몇 곳 뜨거운 곳 찾아가 경마 중계하듯 분위기 전달하면 끝이다.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더 깊이있는 내용을,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보도하는 경우란 찾기 힘들다. 모두가 한 버스만 타고 다니지 거기서 내리려 하지 않기 때문. 일손부족만을 이야기한다면 보따리 싸야하지 않을까.

이번 지방선거에는 몇 신문사, 몇 기자만이라도 버스에서 내려, 오토바이도 타고, 때론 자전거도 타며 취재하는, 그래서 오토바이나 자전거 타고 취재한 흔적이 보이는 기사를 보고싶다.

/김옥렬 전남대 언론홍보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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