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는 '절대악' 인가
항생제는 '절대악' 인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6.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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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유등등]허연 가정의학과 의사
지난 1월5일 참여연대의 청구를 받아들인 서울행정법원은 "전국병의원별 항생제처방을 공개해야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해 3분기 중 목감기와 인후염 등 급성상기도감염 환자에 대한 종합전문병원 및 종합병원, 병·의원 등 전국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률을 9일 공개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의료기관의 항생제 처방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 명단 공개를 결정했다"면서 "앞으로도 매 분기마다 항생제 처방률을 공개하는 등 정보 공개에 적극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들은 항생제 사용을 용도에 맞게 적절히 해야 한다는 취지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악영향이 염려된다.

세상에 "절대"는 없다

딸이 아주 심한 아토피로 고생하는데도 스테로이드나 항생제치료를 거부하고, 생식요법, 한방치료, 커피관장 등 민간요법만을 시행하는 분을 알고 있다. 항생제는 세균의 내성만을 증가시키고 스테로이드는 몸을 약하게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을 상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분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권유하고 있다.

그분의 행위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옳을 수도 없다. 세상에 '절대적'인 어떤 것은 없는 법이다. 이를테면 항생제가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적절한' 사용이다.

또 하나, 비전문가의 '상식'으로 우리아이를 치료하는 것이 적합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풍에는 한방치료를 시행하고, 대부분 자연 치유되는 구안와사(입이 돌아가는 병)에 무수히 많은 침을 쓰는 것이 주위사람들의 상식이다. 드라마 [허준]을 통해 익숙해진 '상식'인데 과연 관련 전문가들보다 TV드라마가 더 믿을만한 것인지 의문이다.

또 다른 예로, 단순 호흡기질환, 즉 감기를 살펴보자. 감기에는 항생제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세련된 아이엄마들의 상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체와 질병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감기의 질병코드에는 매우 다양한 상태의 중이염, 편도선염, 기관지염, 인후염 등 무수히 많은 질병들이 포함되어있다. 경우에 따라 항생제를 써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때때로 항생제는 필요하다

상식 속에는 옳은 것과 그른 것,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얽혀 있다. 그러므로 항생제의 오남용은 처방권을 가진 이들을 대상으로 선도 되어야지 일반대중을 상대로 '폭로'되어서는 곤란하다. 항생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사라지고 불필요한 혐오감내지는 공포감만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항생제만으로 치료 가능했는데 불필요한 혐오로 말미암아 감기를 앓다가 중이염까지 걸리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미원을 조금 사용하는 요리사와 마이신을 적게 쓰는 의사가 이 사회의 '절대 선'이라는 식의 논리는 폭력적이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 범위를 좁힐 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항생제를 써서는 안된다는, 확인되지 않은, 그럼에도 절대진리화한 '상식'으로 매순간 항생제사용의 타당한 이유를 고민하는 이들을 선악의 차원에서 구분 짓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참고로 항생제 과다처방의 근거로 제시되는 WHO의 '항생제처방 권고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생제처방 이상치만 있을 뿐이다.

/허연 가정의학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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