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과 군산에 남겨진 것
부안과 군산에 남겨진 것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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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독립신문 시론]정부와 지자체 책임은 간데 없고, 주민들만 후유증 몸살
   
▲ 김승환 전북대교수. 법학 ⓒ부안독립신문
방폐장 건설이라는 국책사업이 부안과 군산을 핥고 지나갔다. 찬반 주민간의 갈등, 고소와 고발, 구속과 전과자라는 상처가 두 지역 주민들의 삶을 짓이겨 놓았다.

부안 방폐장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에 자율적 주민투표라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정부와 전라북도 그리고 부안군이 주민들의 의사를 차분히 읽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채, 난제 중의 난제인 방폐장 문제를 일방통행식으로 처리하려는 시도에 대항하여 부안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의사를 묻는 투표를 진행한 것이 부안 주민투표이다.

부안에서 실패한 정부의 경험은 주민투표법이라는 역설적 성과물로 이어졌다. 주민투표법 제8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를 관계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지난 11월 2일 역사상 최초로 주민투표법에 근거하여 국가정책에 관한 주민투표가 군산을 포함한 전국 4개 지역에서 실시된 것이다.

군산 주민투표 몇 가지 이변 낳아

무엇보다 높은 부재자 신고율이 눈에 띤다. 역대 공직선거에서 부재자 신고율은 3%대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군산 부재자 신고는 (경주와 함께) 무려 40%를 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를 두고 정부와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개정 공직선거법상 부재자 신고의 요건이 완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구실을 붙였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전에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의 부재자 신고율이 3%를 넘지 못했다는 현실은, 그들의 항변이 얼마나 억지인가를 증명했다.

주민투표법 제21조 제2항 제2호는 공무원의 투표운동을 금지하고 있고, 법 제30조 제2호는 이에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라북도와 군산시는 공무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투표운동을 강행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의 투표행태를 재현한 셈이다.

방폐장 설치를 둘러싼 부안과 군산에서의 주민과 주민,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주민과 정부 사이의 충돌은 두 지역에 깊은 상처만을 남겼다. 그것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입은 상처가 아니라 지역주민이 입은 상처이다. 원인 제공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지만 그들은 온데간데없고 지역주민만이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돌풍을 등에 업고 이 지역 국회의원 10석을 고스란히 챙겨간 열린우리당마저도 부안과 군산을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난 8월 15일 정부가 광복절 특사를 단행했을 때 정치인을 비롯한 수많은 악질범들, 파렴치범들이 대통령 사면권의 특혜를 누렸지만, 부안 주민의 사면을 건의한 책임 있는 집단은 없었다.

이 순간 부안과 군산 주민에게 남겨진 것은 그들의 문제를 그들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방폐장 건설 찬반 양측의 갈등을 중재해 줄 합리적인 조정자는 없다. 양측의 주민들이 정부를 향해서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머리를 맞대고 숙고해 보아야 한다. 주민들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전투적 사고를 버리고 자신들의 삶에서 앗긴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확인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부안 독립신문 김승환 전북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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