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들 다 쥑이는 그 약 묵고 사램이라고 워디 성하것냐?
벌레들 다 쥑이는 그 약 묵고 사램이라고 워디 성하것냐?
  • 정지아
  • 승인 200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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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오늘]정지아 소설가
추석 때 시골에 다녀왔다. 어려서 한 형제처럼 살갑게 자란 친척들을 연례행사로 만났다. 발가벗고 미역 감던 유년의 동무들이었는데, 여기서도 단연 최고의 화제는 돈이었다.

학창시절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른들에 의해 성적으로 서열이 매겨지더니, 중년 쯤 이르니 이제 돈이 우리의 서열을 정해놓았다. 가방끈 길다고(물론 천재도 아니요, 서울대에 당당히 합격하여 집안의 자랑거리가 된 수재도 아니었다) 한동안 집안 대접이 융숭했던 나도 영락없이 찬밥신세다.

고등학교 나와 부동산 중개업에 종사한 지 삼십 년, 서울 강남에 집이 여러 채인데다 해외로 부부동반 골프 여행을 다닌다는 사촌 하나가 어른들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그 사촌, 성격도 좋아 집안어른들은 물론 인척관계 없는 동네 어른들에게까지 푸짐한 선물을 잊지 않았다.

“공부 잘 허는 것이 최곤 중 알았드만 공부 잘 혀봤자 암 짝에도 쓸 디 없어야.”

굳이 나를 겨냥하여 한 말이 아닐 터인데, 추석 앞두고 대체 몇 집에나 선물을 해야 할 지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수없이 망설였던 나로서는 내 이야기기나 한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세 끼 밥 잘 먹고, 몇 년 묵은 것이기는 하나 중고차도 굴리고 있으니 이만하면 옛날 기준으로는 부르주아라고 내 형편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무슨 날을 앞두고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이렇듯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사람 행세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인지상정이려니 덤덤해지고 싶지만 귀성길, 어쩐지 입맛이 쓰디썼다. 하기야 국경도 뛰어넘은 자본주의의 위세가 내 고향이라고 비켜갈 리 있는가. 알면서도 사람에게 고향이란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요, 유토피아인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내 고향만큼은 내 유년의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옛날, 1900년생인 우리 할머니, 유관순 누나보다 나이 많은 우리 할머니, 고손자까지 백 오십 명에 달하는 자손들 중에서도 하필이면 못되고 못난 사람에게만 유독 정을 쏟았고, 그런 자손이 목 길게 늘어뜨리고 빈손으로 머뭇머뭇 대문을 들어서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아가, 아가, 한없이 다정한 손길로 그 지친 등을 쓸어내렸다.

그런 자손일수록 집 떠날 때 손에 들린 것이 많았음은 물론이다. 첩첩산중 반내골에서만 평생 살아온 할머니 난생 처음 서울 구경 시켜 준 자손도 있고, 무슨 때마다 용돈 넉넉히 안겨주는 자손도 있었지만, 할머니는 눈 감는 그 순간까지 못나고 못된 자손들에 대한 걱정과 넘치는 사랑으로 안타까워했다.

그 할머니, 돈이 급해 어제 농약 친 채소들이라도 장에 내다팔려 하면, “아이, 벌레들 다 쥑이는 그 약 묵고 사램이라고 워디 성하것냐? 그 돈 없다고 죽을 일 없응께 내비둬라. 넘헌티 몹쓸 짓허고 잘 되는 사램 못봤다.”라며 기어이 팔지 못하게 했다.

요즘 시골 사람들, 병든 채소는 값이 안 나간다고 내다 팔기 직전에 농약을 치는 일도 더러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것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슬픔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해도 시골사람들이 살아남기 힘든 상황임을 알면서도, 나는 또 도시 사람의 이기심으로 내 고향만큼은 세상의 어떤 풍파도 이기고, 사람의 도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곳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향이 우리 모두의 영원한 고향으로 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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