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전 개발의혹, 행담도, 안기부 X파일, 삼성의 선거 및 로비자금, 부동산 가격의 상승, 비리정치인의 8.15 특별사면, 부의 편재현상과 계층간의 양극화 현상 심화, 청년 실업 문제, 농산물 개방에 따른 농촌의 붕괴로 인한 농민의 아우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규, 도시 빈민들의 자살행렬….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남북간의 관민 교류, 세계 곳곳의 테러, 허리케인에 당한 미국의 상황 등 스쳐가는 뉴스의 물결에 치어 국민은 불과 몇 달 전의 일도 망각해갔다. 그 와중에 정부는 자신들의 치부를 은폐하고 실정(失政)을 국민의 기억에서 분리하는데 성공했는지 모른다.

최근 대통령은 연정(聯政)을 이야기했다. 국가적인 최대 화두가 지역구도 타파라고 하면서 마치 연정만이 지역구도를 깰 수 있는 복음인양 강변했다. 더불어 권력을 통째로 내놓을 수 있다고도 하고 대통령의 임기 단축도 언급했다.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역사적 뿌리가 어떻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한나라당의 역사적 과오를 모를 리도 없었을 것이다. 또 영남 지역보다는 기득권 계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대연정의 상대인 한나라당이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지 않은가.

나아가 한나라당은 정부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8.31부동산 대책 발표에도 불만을 표시하며 기득권 세력을 대변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강남의 집값은 끄덕하지 않았고 서울의 한쪽에서는 여전히 투기 열풍이 일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럼에도 그런 사실을 외면하고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등을 돌려가면서 마치 분홍빛 연정(戀情)에 들뜬 사람처럼 끈질기게 연정(聯政)을 제안했다. 지지자들도 비판하고 여당 내에서도 다수가 수긍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데 대통령 혼자 고집하는 꼴이었다.

더욱 가관은 그러면서 대통령은 자신을 대붕(大鵬)으로 착각한 것인지 국민을 참새나 제비쯤으로 취급하면서 ‘국민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대통령의 언행을 관망하는 선량한 국민은 얼마나 괴롭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는지 모른다.

7일 한나라당의 대표와 회담은 끝났다. 박 대표의 위상만 높여준 대통령의 참패였다. 그동안 대연정과 선거제도의 개혁이 지역구도를 깨는 해법이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정치의 실패, 경제의 실패를 호도하기 위해, 또 특정 세력의 비리를 엄폐하기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의심받았으며, 더 심하게는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끌고 갈 대안도 자신도 없기에 그런 무책임과 비겁을 관용으로 포장한 채 ‘정치적 결단’을 감행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만 컸다. 그런 의혹은 앞으로 대통령과 여당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진실로 선량한 국민은 대통령이 필요이상 ‘진정성’을 강조하며 말로 앞장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 이상 국민이 정치적 실험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국내 갈등도 서로 이념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른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민족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이제 연정에 더 이상 연연하지 말고 민족의 에너지를 결집하여 계층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통일을 대비하는 이념 공유에 노력하자. 실종된 개혁의지를 되찾고 진보의 희망을 만드는데 국민의 뜻을 모으자. 대통령은 그런 자리에 선량하고 힘없는 국민과 함께 서주기를 바랄 뿐이다.  / kshong2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