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 정지아
  • 승인 2005.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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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오늘]정지아 소설가
   
지난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평양에서 남북작가대회가 개최되었다. 남북의 작가들이 해방 이후 60년 만에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였다. 모든 ‘처음’이 그렇듯 60년 만의 남북작가대회는 여러모로 뜻 깊었다. 대회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신문들이 다룬 바 있으니 생략하겠다.

평양은 과연 남에서 듣던 대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8차선 대로에는 심심하면 한 번씩 낡은 자동차나 버스가 지나다녔고, 남한 작가들의 숙소였던 평양역 인근의 고려호텔은 번화가일 것임에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행색 또한 남한 소읍의 60년대를 방불케 했다.

우리네 6,70년대에 그러했듯 살 찐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고, 햇빛에 그을어 새까맣고 윤기 없는 사람들은 웃통을 벗어던진 채 러닝셔츠 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마치 60년대 말이나 70년대 초반, 남한의 어느 시골마을로 시간여행이라도 떠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뿐이랴. 남에서 듣던 그대로 북한은 폐쇄적이었다. 작가들이라 다른 어떤 단체보다 많은 자유를 주었다고 하는데도, 매일의 일정은 북한 체제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들로 상당수 채워져 있었고, 정해진 코스 외에 한 발짝도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 금을 넘어 평양의 공기를 맛보고 싶어 했던 몇몇 작가들은 물론 따끔한 경고를 받았다.

이것은 남한의 작가들이 본 사실 그대로의 평양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근거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은 제각기 달랐다. 보수적인 시각의 작가들은 인민들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권력 지키기에 혈안이 된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분노를 금치 못했으며, 자유주의적 시각의 작가들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북한의 방식에 답답함을 금치 못했다.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자본주의의 모순에 관심이 많은 어떤 작가들은 자본의 위력이 아직 맹위를 떨치지 못하는, 지구상 유일의 나라, 북한에서 만난 순박한 인간들에게 매료당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유일의 이데올로기로 남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염려하면서도 이미 자본의 맛에 길들여진 그들은 때 묻지 않은 북한인민에게 감동한 만큼이나 질 낮은 칫솔, 남한의 자판기 커피보다 맛없는 호텔 커피, 모든 상품의 조악한 포장 등을 못 견뎌 했다. 그러면서 그러는 자신들을 씁쓸하게 반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과 북은, 참 많이 달랐다. 너무 달라서 이대로 통일이 되면 안 될 것 같다고 자조하는 작가들도 적지 않았으며, 캄캄한 어둠에 휩싸인 한여름 10시의 평양 시내를 내려다보며 이 막대한 통일비용을 왜 남이 다 부담해야 하느냐고 분노하는 작가도 없지 않았다.

착잡한 심정으로 평양과 백두산, 묘향산에서 5박 6일의 일정을 보내고 순안비행장으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작가들은 이미 내 것인 양 친숙해진 평양거리를 애잔하게 바라보았고, 그동안 함께 다닌 안내원과 아마도 보안요원일 성 싶은 딱딱한 표정의 북한사람들과 애틋한 이별을 나누었다. 그 순간만큼은 좌도 우도 존재하지 않았다. 비슷하든 다르든, 미웠든 고왔든,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정(情)만이 오롯했다. 그때 우리는 남도 북도 아니고, 그저 사람일 뿐이었다.

사람은 머리로 이해할 수도 있고, 마음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함께 보낸 세월로 이해할 수도 있다. 남과 북의 다른 체제는 머리로 이해해야 할 테지만, 남과 북의 사람은 만나고 함께 부딪치며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60년 만에 개최된 남북작가대회의 가장 큰 결실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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