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과 ‘2.28’, 그리고 ‘5.18’
‘9.18’과 ‘2.28’, 그리고 ‘5.18’
  • 김하림
  • 승인 2005.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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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오늘] 김하림 (조선대 교수, 광주전남문화연대상임대표)
   
올해는 광복 60주년, 즉 환갑을 맞이한 해이다. 남과 북도 서울에서 8.15행사를 공동으로 열어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문제를 우리나라에 국한하면 광복 60주년이지만, 아시아지역으로 확장하면 태평양전쟁 종전 6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중국에서는 승리 60주년이라고 명명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대륙, 타이완,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과 같은 동남아시아국가들도 해당되는 사실 범세계적인 기념의 해이기도 하다.

지난 7월 초에 중국의 선양(심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학술대회에 참석차 갔다가, 중국 선양시에 세워진 ‘9.18’ 만주사변 기념박물관을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규모나 내부 디스플레이 등은 자랑할만한 것이었다. 심지어 당시의 탄환들도 수집해서 전시하고 있고, 밀림 속에서 항일투쟁하던 모습들도 거의 사실적으로 재현해놓았다.

‘9.18’기념관은 중국으로서는 다시는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겠다는 역사적 교훈과 자신들의 강대해진 국제적 위상을 과시하는 시설이기도, 동북지방에 대한 자신들의 역사를 확인하는 미래를 확정하는 박물관이기도 했다.

1931년 9월 18일에 발발한 만주사변은 일본제국주의 세력의 본격적인 중국 침략의 신호탄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병참기지로 전락하여 탄압과 수탈이 강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날로 전쟁이 확장되어 급기야는 징병, 징용이 강요되는 인적 수탈이 자행되는 계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8월 초에 방문한 타이완의 타이뻬이에서는 ‘2.28’기념관을 관람했다. ‘2.28’사건은 1947년에 발발했다. 타이완은 1895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이후, 전쟁배상금으로 타이완을 일본에게 할양하면서부터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다.

50년간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었다. 그러나 본토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격화되어 타이완은 공백상태에 처해 있었다. 공산당에 밀린 장개석이 이끈 국민당은 최후의 보루로 타이완을 상정했고, 국민당 군대를 파견하여 타이완을 장악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당 군대가 타이완 민중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사건이 ‘2.28’사건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20만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잔혹한 학살사건이었다. 그러나 무력과 정치권력을 장악한 국민당에 의해 ‘2.28’은 장개석과 장경국이 사망할 때까지, 망각을 강요당하거나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러나 2000년 대선에서 권력을 장악한 ‘민진당’은 타이완 본성인(장개석을 따라 건너온 대륙출신들은 타이완 사람들은 ‘외성인’이라 부르고 자신들은 ‘본성인’이라 부른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본성인이 학살당한 ‘2.28’사건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고, 이 기념관을 타이뻬이에 개관하였다.

시간이 오래 흘렀고, 40여년간 침묵을 강요당했기 때문에, 전시물은 사실 초라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를 이해하고, 기억하고, 미래를 전망하기에 ‘2.28기념관’은 충분하였다.

‘9.18’을 관람한 한국인팀과 ‘2.28’을 관람한 한국인팀은 달랐지만, 술 한 잔 하는 뒤풀이 자리에서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광주’에서 온 본인에게 ‘5.18’은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더 비판적인 이들은 5.18은 어떤 계획이나 있느냐고 질책하기도 하였다. 무어라 변명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처지에 처했던 참혹한 심정에 사로잡힌 순간이었다.

물론 5.18은 앞의 두 사건보다 최근의 일로 이제 25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좀더 큰 틀에서 보자면, 동아시아의 식민지, 후식민지체제에서 발생한 동일한 궤적선상에 놓여 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보고 배울 ‘기념관’이 하나 없는 ‘5월’, ‘시민은 간 데 없고, 행사만 나부끼는’ 5월이 더욱 안타깝기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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