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허(許)하라
상상력을 허(許)하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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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대한민국] 임사랑 조대신문사 편집국장
얼마 전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 3시간여의 비행 끝에 도착한 홍콩에서 내가 처음 마주친 문화적 충격은 바로 지하철이었다.

홍콩의 중요 교통수단중 하나인 지하철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몇 개 되지 않는 노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음 목적지까지 30여분을 타고 가면서 나는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편안함’과 ‘청결함’을 경험했다.

홍콩 지하철은 인간을 중심에 둔 안전제일주의와 승객 편의주의가 배어있는 듯했다. 참혹한 아픔을 남겨준 대구지하철 참사와 같은 일을 겪고 나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승강장 안전벽을 만들거나 차량 좌석을 세라믹이 코팅된 불연재로 교체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랐다.

일주일 가까이 그곳에 있으면서 배우고 느낀 것은 지하철뿐만이 아니었다. 홍콩의 인구과밀을 잘 소화해 내고 있는 ‘숲속 도시’ 또한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기후관계상 깨끗하고 페인트칠이 잘된 건물은 많이 찾아 볼 순 없었지만 홍콩의 콘크리트 숲은 나름대로 정감 가는 홍콩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엄청난 사람들이 쏟아내는 오물이 다 어떻게 처리되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부두는 깨끗했다. 또 수많은 마천루들을 보면 홍콩은 고도제한이라는 규제를 모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좁은 지역에 넘쳐나는 인구를 생각하면 고도제한은 사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고층 대형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홍콩의 거리는 무척 이채로웠다.

나는 이런 경제를 현명하게 유지해 나가는 홍콩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대학가와 도서관을 찾아 보았다. 특히 앞으로 홍콩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학생들이 많이 찾는 도서관... 그중에서도 홍콩 빅토리아파크의 동쪽에 접한 홍콩 중앙도서관! 멋진 클래식외관 만큼이나 규모도 최고를 자랑하고 있었다. 또 하나, 한국 도서관에서는 접하기 힘든 자유로운 도서관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심취해 버리고 말았다.

러시아에 있는 어느 도서관에서도 몇 해 전에 비슷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거지인지, 노숙자인지, 풍기는 냄새에서부터 더러움으로 정확한 정체가 불분명한 인사가 카페트가 길게 깔린 바닥에 다리를 쭉 뻗고 도서관 중앙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은 또 한 번 나에겐 작은 충격을 주었다.

그런 행색으로 독서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런 행색을 한 사람이 옆에 와 앉아도 아랑곳하는 시민들은 없었다.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도 옛날과는 다르게 많이 나아져 도서관 출입시에 주민등록증 등의 신분증을 특별히 요구하는 곳은 얼마 없다.

그래서 거지나 노숙자 행색을 한 사람이 공공도서관에 들어간다 해도 저지할 기제는 일단 없는 셈이다. 그러나 들어가 보면 그런 행색을 하고 들어간 사람은 책을 쉽게 뽑아 읽을 수 없는 도서관 분위기... 우리네 도서관은 국민들을 꼭 도둑으로 못 박아 의심하고 규제하는 일에만 급급하지 않은지 해서 드는 생각이다.

책상만을 들여놓은 이른바 열람실이라는 공간 외에는 가방이나 책을 가지고 들어 갈 수 없을 뿐더러 자료실에 들어가려면 간단한 필기도구 이외에는 허용이 되지 않는다. 책 한권이라도 일실을 막아 나라 살림을 알뜰히 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행정편의주의가 앞선 것은 아닌지 싶다.

홍콩 중앙도서관에 가면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에서 가방을 들고 들어가든 책을 잔뜩 안고 들어가든, 규제가 전혀 없다. 몇 백대나 되는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을 즐기는 여러 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저 좋은 책을 읽거나 제 공부를 하는데 아무데나 앉아서 해도 상관없다.

시민들의 양식을 믿고 마음껏 책을 읽고 즐기며 공부하는 장소를 홍콩 중앙도서관은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공간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책에다 비춰보는 사람들이야말로 홍콩번영의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관광 한국, 경제 한국의 이미지가 행여 겉만 번지르르할 뿐 불신과 의심으로 가득 차 온갖 규제에 허덕이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쯤은 돌아보았으면 한다. 규제가 없어지고 인간의 신뢰에 의지할 때 그 나라의 미래는 밝아올 것이다. 

/임사랑 조대신문사 편집국장  ban-mi@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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