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교수 광주, 그리고 젊은이에게
리영희 교수 광주, 그리고 젊은이에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7.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이강 민족경제연구소
광주 MBC에서 “사상의 은사”를 모시고 임헌영선생께서 좌담식으로 리영희교수님의 생애담을 나누었다. 나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여기면서 왜 진즉부터 이러한 방송을 시행하지 않았는가? 아쉽기도 하였다.

광주는 민족사와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선진적이고 희생적이었다. 가까이는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과 1980년 5.18민중항쟁을 들 수 있다. 온 세상이 침묵할 때 오로지 광주만이 일제와 군사독재에 맞서서 싸워나갔다.

모든 싸움에는 그 투쟁이 비록 정의,민주,자유를 위한 투쟁일지라도 언제나 투쟁의 상대인 불의,독재,억압으로부터 피맺힌 탄압과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희생이 따른다. 역사는 그 투쟁을 통해서 전진하고 미래는 희망의 불꽃으로 타오르게 된다.

리영희교수님은 6.25전쟁 동안에는 UN군 통역장교로서 활동하였으나, 군복무 7년을 마치고 합동통신 외신부기자로서 진실의 발견과 보도를 통하여 정의의 투사로 나아갔다. 한양대 교수 “중국문제연구소장”으로서 반공주의에 갇혀 진리와 진실에 굶주린 대학생과 한국민중에게 민족문제와 베트남문제 그리고 중국문제의 본질을 “전환! 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 등의 저서를 통하여 인식과 실천에 서광의 횃불을 밝혔고 마침내 민족민주운동의 지평에 새시대 새희망의 새벽을 불러왔다고 본다.

이러한 진리탐구의 길에서 리영희교수는 언론사 해직, 교수 해직, 투옥등의 고난을 겪으시면서 단 한번도 자신의 논지를 굽히거나 변절하지 않고 오로지 정의의 투사로서 날이 갈수록 지적 내용은 산맥을 이루고, 진리의 흐름은 장강대해를 이루어나갔다.

1980년 5.18민중항쟁 동안 사회대중적으로 대중투쟁을 겪어왔던 광주시민대중과 리영희교수님은 인식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따로인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인 것이다. 19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광주전남본부는 시민대중과 함께 6월민주대항쟁을 날마다 거리에서 해가 지고 또 날이 새는 투쟁의 나날을 보냈다.

88년 여름에 리영희교수님을 강사로 모시고 광주 남동성당에서 시민대중들과 함께 “지성인의 역할과 과제”라는 강연회를 개최한바 있었다. 역사는 시민대중의 참여에 의하여 변화 발전한다. 그리고 시민대중은 리영희교수님과 같은! 선각 지성인의 가르침을 무기로 자신의 인식을 바꾸고, 나중엔 시민대중 전체의 인식을 어깨동무하여, 5.18민중항쟁 처럼 대중투쟁을 전개하여 피어린 희생을 통하여 전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5.18민중항쟁을 이야기하고, 민족민주민중운동은 빛고을 광주를 민주혁명의 깃발이 펄럭이는 혁명운동 요람의 기지로 알고 있다. 빛고을 광주의 오늘이 있기까지 생과 사를 가리지 않고,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던 선배들의 피어린 투쟁과 민주열사의 희생에 대하여 다시 한번 그 의미와 가치를 흠모하여야 한다.

5.18민중항쟁 기간 1주일 동안 광주는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무법난동”“범죄집단”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평소 군인,경찰,행정이 유지 될 때 보다도 군인,경찰,행정이 떠나버린 1주일 동안에는 단 한건의 범죄,절도,강도등의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의 객관성은 모든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로 떠오른다.

1주일 동안 외부와의 모든 관계가 끈겼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대중들은 폭력적 계엄군에게 저항하기 위하여 스스로 시민군을 조직하였고, 시민들은 매점매석 없이 “나눔사회”를 이루었고, 의료기관은 사망자 부상자들에게! “무료진료”를 아끼지 않았고, 시민은 물론 창녀 아가씨들 까지도 헌혈운 동에 동참하는 이상사회의 자치조직을 형성하여갔던 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호남 소외 때문에 여전히 어렵고 고단하지만 민중은 아니 제3세계 민족민주민중운동은 빛고을 광주를 “민주혁명의 메카”라고 생각하고 매년 5.18민중항쟁 기간 동안에는 “광주로! 광주로!”라는 관심과 애정과 참여의 발길이 멈추지 않고 밀물처럼 찾아온다.

빛고을 광주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야 말로 “민주혁명고을”의 주인공으로서 찾아오는 외지인 보다는 스스로 빛고을적이어야 하고 광주인으로서 보람과 긍지를 그들과 함께 아낌없이 나누기 위하여서는 광주인 스스로 리영희교수님의 생애담이 기록된 “대화”라는 책속에 참여하여 광주인 스스로도 대화의 주인공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지성과 정서와 실감을 공유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강 민족경제연구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