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의 꿈
한 여름 밤의 꿈
  • 시민의소리
  • 승인 2005.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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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대한민국]이지원 전대신문사 편집국장

   
“다녀오겠습니다” , “그래 조심히 잘 다녀오너라”
요즘 방영되는 한 주말연속극 주인공은 아침에 부모님께 이렇게 인사하면서 출근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되는 것 없어도 희망은 한 가득 명랑백수 한정우’는 현재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치킨가게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아침에는 세차를 하고, 오후에는 면접을 보러 다니는 일명 백수다.

어려운 때에 세차라도 하고, 치킨 배달이라도 하니 완전 백수보다는 형편이 낫지 않느냐는 얘기는 우선 접어두더라도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캐릭터에 청년실업의 모습이 그려지기는 처음인 듯 하다. 반가운 건 이 때문일까.

‘삼순이’가 거짓 없고 솔직한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한정우의 모습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는 취업의 문 앞에 발버둥치는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이다. 나는 이 연속극이 단순 재미가 있다거나, 혹은 으레 다뤄지는 가족이나 사랑 얘기가 중심 주제라서 보는 것이 아니다. 실은 연속극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의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사는 내 모습, 내 얘기이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요즘 세상에 몇 개월 코스 취업 학원을 다니며, 오로지 ‘안전한 직장’을 향해 젊은 날의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이 매번 답답하다. 

6시 기상.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떠가며 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학교 식당에서 대충 아침을 먹고 다시 점심때까지 열공(열심히 공부한다는 줄임말)한다. 토익 공부부터 시작해 컴퓨터 자격증, 공무원 시험 준비 등 각종 시험공부 준비에 다른 이들도 여념이 없는 것을 둘러보면서 또 다시 열공한다. 머리를 식힐 겸 바람을 쐬면서 커피 한잔 하는 여유에도 취업 게시판을 열심히 보면서 혹시 내가 일할 곳은 없는지, 기회는 없는지 찾아보기 바쁘다. 도서관 한 열람실 안에는 노트북으로 동영상 강의를 듣는 이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잘 할 있다’라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저녁을 먹고 다시 열공한다. 오후 10시가 넘어갈 즈음 버스가 끊기기 전에 집으로 향하는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주섬주섬 하루 내내 열공한 책들을 정성스레 가방에 넣는다. 다행히 집이 가까운 이들은 도서관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앉아서 또다시 열공한다. 행여 면접을 봤다거나, 시험에 합격한 친구들 얘기가 나오면 부러움과 함께 취업하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 한숨으로 배어나온다.

학문의 상아탑 대학에서 더 이상 학문만을 얘기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동안 쉬쉬하며 덮어두기에 바쁜 취업률이 공개되고, ‘높은 취업률’이 대학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됐다. ‘대학만 나오면 취업은 그만’인 시대는 가고, 대학졸업장이 훈장인 시대 또한 갔다.

한 집 건너 청년실업자라는 한 중앙일간지의 기사는 청년실업이 더 이상 자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주지만 상황은 암울하다.  무지 더운 요즘 도서관을 친구삼아 취업으로 효자, 효녀가 되려고 열공하는 취업준비생 청년들에게, 취업이 ‘한 여름 밤의 꿈’으로 그치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이지원 전대신문 편집장jajenk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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